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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절거림

파지를 읽게 된 사연?

by 발비(發飛) 2005. 5. 25.

아주 오래 전부터 파지를 읽은 것은 아니다.

어느날 파지를 읽고 있는 나를 보게 되었다. 내가 왜 파지를 읽고 있는걸까?

매일 매일 파지를 읽는 것이 습관처럼 되어있는 내가 신기해서,

내가 무엇을 읽나 보기로 했다.

그날의 일기이다....

이즈음에서 왜 파지를 읽게 되었는지 정도는 이야기하고 싶어졌다.

어차피 혼자 읽는 파지보다는 함께 읽으려고 블로그에 집을 지은것이니깐...

 

 

 

 

2005.3 어느날 일기

 

 

신간이 나올 때마다. 책들은 일정한 두께로 밴딩처리가 된다

밴딩처리를 할 때 책이 상하지 말라고 책 위에 파지인쇄물을 얹어둔다.

그 파지가 아주 재미있단 말이지.

어떤 때는 공인중개사 문제지, 고등수학 문제지,

때로는 잡지, 때로는 시집

때로는 신앙서적,

오늘은 디자인책

참 다양한 종류들이다. 그것들이 재미있다.

난 책을 묶으면서 그것들을  읽는 재미에 빠지기도 한다.

 

 

전혀 생소한 활자들

책이 아닌 파지들. 파지에도 검정 잉크는 묻어있고

4도색이 화려하게 찍혀있고, 페이지도 있는 책에 들어갈 운명이었던 파지들

그 파지들은 집중력을 높여준다

왜냐면, 다 있는 것이 아니니까

앞 뒤가 없으니까

앞 뒤를 유추하려면 잘 읽어야 하니까...

 

오늘은 참 흥미있는 파지가 얹혀져 왔다

건축물 설계와 투시도 그리고 여러가지들

이 책이 무슨 책인지는 모른다. 그렇게 나왔다

종이도 두꺼운 스노우화이트지다. (두꺼운 종이가 이렇게 파지가 되다니 아깝다)

 

난 생각했다

제본소는 기계가 돌아가고 잘려나간 인쇄물들이 지천이고

난 기름에 묻은 시커먼 손으로 바닥에 떨어진 종이들을 줍는다

그리고 기계옆에 기대어 앉아  파지들을 읽는다.

파지의 내용은 너무 다양하다.

3류 포르노물에서 철학책, 법률책까지

때로는 만화도 ..

세상의 온갖 이야기들이 파지에 실려서 세상처럼 버려지겠지

 

유광라이네이팅, 마메이드 상아 250, 금색동판.

화려한 신간 위에 얹혀온 파지가 재미있다

 

오늘 파지로 책을 만들려고 한다

내가 페이지를 맞추어놓은 8장 16면의 이야기.

사방 가장자리들을 칼로 고르게 잘라, 스템플러로 찍고

그 위에 하얀 종이테이프를 붙여 책을 만들었다

오늘 16페이지 짜리 책을 읽을 것이다.

 

제목 모름

지은이 모름

쟝르 모름

그러므로 이책은 [모름]이다.

 

 

 

@흐음 2005 Printed in Korea

 

ISBN 67-310-1430-7

1판 1쇄 연재시작일/2005.3.22

 

값;공짜

 

 

-작가의 말-

 

난 오늘부터 아침에 새로 제작된 세상의 단 한권밖에 없는 불완전책인

[모름]에 대한 기획독후감을 쓰려고 한다.

이 책은 모두 14장이다.

거두절미된 책이다.

출생일, 출생지, 이름, 성별, 아무것도 모른다.

그래서 만들어 줄 것이다

난 14장을 한 장씩 읽을때마다 그 이야기를 할거다.

책이 되도록 할 것이다.

원하지 않는 삶을 살아가게 된 파지, 인생역전이 있으니

비록 부자로 살지는 못하지만, 마음만은 여유롭게 만들어 줄 것이다.

이것도 물론 내가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나의 손과  DNA가 하는 일이다.

난 모른다.

모르는 길을 간다는 것은 스릴있는 일이다. 재미있어서 숨이 막히려 한다.

[모름]

너 때문에 재미있다.

 

 

-서시-

 

내게로 왔다

탯줄도 자르지 않은 채 업둥이로 내게 왔다.

소독되지 않은 박스컷터로 너의 탯줄을 잘랐다

무명실이 아니라, 스템플러로 탯줄을 봉했다.

몇 번만에야

너의 탯줄을 묶을 수 있었다

너를 씻긴다.

하얀 종이테이프로 배냇저고리를 만들어 입힌다.

말끔하다.

배냇저고리 입고 있는 너를 보니

구유에 누웠던 어느 아기가 생각이 나는구나.

오늘 내게로 온 너가 반갑다.

너를 나에게 보낸 뜻을

...... 

이젠 내가  나의 너로 맞아 들여야겠다

나에게 와줘서 고맙다

 

 

그렇게 [모름]이라는 책을 만들어놓았다.

남들이 보기엔 그냥 연습장에 스템플러 찍은 것이지만, 나에게 파지의 부활과도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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