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하다.시작도 끝도...
일단 영화가 시작하자 화면이 마치 사포에 화면이 찍혀있듯이 거칠다.
그래서 화면 하나 하나가 흩어져 보인다, 불안하다.
한 화면으로 온전히 보여주면서 화소낮은 필름을 보는 것처럼 선명하지 않다.
그것이 젊음이겠지만..
[니무라]는 24살 꿈은 잠잘때만 가지는 청년, 꿈이나 희망따위는 가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마치 태생적으로 그의 뇌에는 아예 없는 듯 보인다. 그는 물수건 공장에 다닌다. 임시직으로
마냥 거기서 일을 하기고 나머지는 잠을 잔다.
공장에서 [마모루]라는 세살위의 형을 만나 유일한 친구로 지내게 된다.
마치 [데미안]에서 처럼 [마모루]에게 조종(?)당하기 시작한다.
[마모루]는 사장이 그를 해고시키자, [마모루]는 사장을 죽이고, 감옥에서 자살을 한다.
[마모루]가 키우던 해파리는 밝은 빛을 내는 화려하지만, 쏘이면 치명적인 바다생물이다.
[마모루]는 민물에서도 살 수 있게 해파리를 훈련중이라고 했다.
[마모루]가 죽자 해파리를 [니무라]가 키우게 되고,
조종인이 없어지자 삶의 갈피를 더욱 잡지 못하던 [니무라]는 해파리를 동경의 하천으로 보내버리게 된다. 그때부터 [니모루]는 집착한다.
어항에서만 해파리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동경의 하천에 해파리의 먹이를 주면서 번식시킨다.
어느날 해파리는 떼를 지어 동경하천에 밝게 빛을 내며 떠다니고,
해파리때문에 피해자도 생기게 된다.
[마모루]의 아버지는[ 니무라]를 돌봐주며, 그를 이해하고 도와주려고 무던히도 애를 쓰지만, 결국은 벽은 세대간의 벽이다.다만 벽일뿐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수백마리로 번식된 해파리떼는 마지막에 바다를 향해 떠가고,
[니무라]는 해파리의 자유를 찾아 길떠남에 기쁨을 느끼며 그들을 배웅해준다.
그때 [마모루]의 아버지가 해파리에 쏘여 쓰러진다.
그리고 일본거리의 해파리같은 젊은 청년들이 떼를 지어가는 장면으로 영화는 끝을 맺는다.
영화가 끝나서 나오면서 생각한 것...한번 더!!!!!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갈등하는 감독은 갈등상태에서 끝을 낸다. 결론을 주지 않는다.
해파리는 감당못할, 동경이라는 도시의 거대한 틀에 갇혀서 길들어져 살아야만
하는 청년들일 것이다. 하지만 항상 꿈꾼다. 바다를...
그들을 건드리면 폭탄이다. 그리고 터진다.
어른들은 노력하나 벽은 벽이고 세대는 세대인것을...
이 영화를 만든 감독이 그랬단다.
제목을 [밝은 미래]라고 붙이고 영화를 만드는데, 결국 어두운 영화가 되었다.
하지만 이야기는 이야기가 흘러가는 데로 그냥 두기로 했다고..
이 영화를 찍은 다큐영화를 제작해 그것의 제목을 [애매한 미래]라고 지었다면, 감독의 마음이 이해되는 것도 같다. 그래 인정이다.
우리는 무슨 말을 하다보면, 원래 그 말을 하려고했던 것은 아닌데,
나도 모르게 차라리 앞 뒤가 자연스레 맞는 어떤 다른 결론의 이야기를 하게 된다.
바로 그런 것일거다.
도시 속의 해파리.
해파리는 도시속에서 밝은 미래를 가질 수 있는 것일까?
바다로 떠나든가, 해파리임을 포기하던가..
감독은 어떤 것으로도 단정하지 못했을 것이다. 둘 모두 어려운 일이면서 무서운 일이다.
살기에 따라서는 참 어렵고도 복잡한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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