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안동으로 귀향을 하면서 가장 먼저 하고 싶었던 것이,
앗, 가장 먼저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가장 먼저 안 하고 싶은 것이 염색이다.
지금 안 하고 싶은 것을 안 하고 있다.
그리고 어제 처음으로 흰머리가 보이는 앞머리를 까고 감자 산책을 나갔다.
괜찮았다.
솔직히 이런 경험이 있는 분들은 공감하실텐데, 쫄리는 일이다
늘 염색을 하던 사람이 얼룩덜룩한 모습으로 거리를 활보하는 건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난 용기를 낸거지.
별일 아니었다.
어차피 아는 사람도 없었고, 아는 사람이 있다고 한들 뭐...., 익숙해지겠지.
모두들 알겠지만 염색을 그만두는 것 중 가장 어려운 것은 흰머리와 검은 머리의 웃기는 경계선을 처리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경계선을 지우기 위해 지난 달에는 염색약을 반만 섞어서 실패한 염색을 만들었다.
그라데이션을 위한 실패한 염색하기 몇차례, 좀 지저분하지만 경계는 없어졌다.
그리고 볼륨이 있으면 희끗한 머리의 초라함이 덜 도드라질거라는 마음으로 디지털펌도 했다.
너무 늙어보이면 그러니까 피부관리라도 하자는 마음으로 팩도 이틀에 한 번 꼴로 한다.
귀찮아서 몇 년이나 묵혀두었던 팩들을 모두 다 쓰고, 서른개를 또 주문했다.
염색을 하지 않는 대신, 팩을 열심히하고, 썬크림도 잘 바르고 그럴 계획이다.
여자로서의 새로운 단락이 시작된 거다.
중년인가? 노년인가?
직장인이 아니기에 이런 것들이 가능하다.
다른 삶이다. 그리고 나는 역시 J였다.
어제의 외출은 이런 준비가 대체로 끝난 뒤였다.
앞머리를 훅 까고, 집게핀으로 쓸어올렸다.
한창일 나이때 하던 멋내기 염색이 아니라 새치커버용 염색을 시작한 지 십년쯤 되었던 것 같다.
그때도 염색을 안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당시 상사였던 분에게 사석에서 농담삼아 물어보았다.
새치가 많이 생기는데, 염색을 안할까 생각 중이라고,
그 분의 답은 이랬다.
만나는 작가들이 대부분이 이제 동년배이거나 어린 사람일텐데 편집자가 너무 나이가 들어보이면 어려워할 거라고 했다.
그냥 염색하지, 하고 시작한 것이 지금까지이다.
처음에는 미용실에서 한달, 한달반만에 한번씩 하다가 어느새 3주만에 한번씩 해야할 정도가 되었다.
사실 내 머리가 얼마나 하얀지 알 수 없다.
어쩌면 아버지처럼 실버그레이일수도, 어쩌면 아예 백발일수도, 지금의 나는 얼마나 늙어가고 있는지도 궁금하다.
우리 모두는 안다.
오십대가 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머리가 하얗게 되기 시작하는 나이라는 것을
그런데 하얀머리로 살지는 않는다.
평균수명으로 보자면 앞으로 삼십년은 더 살아야 할텐데, 이미 십년을 했다면 너무 한 것 같았다.
주절주절, 진짜, 모른다.
내가 완전한 그레이가 되었을 때 나는 또 어떤 결정을 할지 말이다.
현재의 결정은 고잉그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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