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텔레스는 감사하는 마음은 금방 노쇠해버린다고 했다.
매일 아침 눈을 뜰 때, 아니 뜨기 전 내게 주어진 것들에 대해 감사한 마음을 새기기로 했다.
아마 사흘에 한 번쯤 실행을 하고 있는 듯 하다.
감사한 마음이 없어서가 아니라 일상에 감사가 배어 있지 않아서 그런 듯 싶다.
매주 일요일 엄마를 성당에 모셔다 드리면 나는 감자양과 함께 안동댐 월영교 주차장으로 간다.
거기서 다리를 건널지, 물길을 따라 올라갈지, 다리를 건너서 석빙고로 갈지, 아님 용상동으로 가는 물길 곁으로 이어진 산책로를 따라갈지, 아니면 민속박물관쪽 공원으로 갈지, 예전 민속촌이었던 구름에리조트로 올라갈지, ... 물길공원으로 올라갈지 그때 마음 가는 곳에 따라 움직인다.
때로는 감자양이 리드줄을 이끄는대로 따라 간다.
그 길이 어느 쪽이든 그 순간 그 곳에 있음에 감사한 마음이 든다.
내게 주어진 이 나른한 평화에 대해 감사한 마음이 된다.
감자양이 지난 가을에 떨어진 솔잎에 코를 묻고 훑고 있을 때,
이끼 낀 바위에서 발을 떼지 못하고 한참을 킁킁거릴 때,
나는 생각한다.
우리가 너무 좋아하는 곳인 서울 아파트 옆 공원, 그곳에서 감자가 킁킁거리며 찾아내었던 햄버거 조각, 씹다버린 껌 등등의 것때문에 늘 날선 산책을 했던 그 때를 생각하면 절로 감사한 생각이 든다.
그래서 감자양이 이끄는 대로 내버려두게 된다.
나 또한 그렇다.
가끔 이래도 되나, 무엇을 해야 하지 않나. 잊어버린 건 없나 하는 생각들이 문득 들 때가 있다.
무의미한 생활은 아닌가.
의미있는 생활은 무엇인가.
생각하게 되지만,
일요일 오전 사람들이 오기에는 한적한 이른 시간에, 아주 간혹 보이는 사람들이 반가운 시간에, 강아지와 산책을 하고 있는 내가 보기 좋다. 그것만으로 보기 좋다.
스페인 북부를 여행할 때, 야네스라는 곳에 간 적이 있었다.
그곳에 성안톤길인가? 남프랑스와 바다를 나누고 있는 곳인데, 깍아지르는 듯한 절벽 위의 푸른 잔디밭길이 5킬로 이상 이어지던 곳이었다. 이른 아침 여행자였던 나는 그곳에 있었고, 그곳에 사는 이들은 강아지, 아니 목줄 없는 개들을 데리고 산책을 하고 있었다. 느긋하고 평화롭게,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일 것이라고 생각했던지 ' 나는 그때 나도 저러고 싶다'가 아니라 외국 영화의 한 장면이 실제로 있구나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풍경이 같지는 않지만 나는 지금 그때 꿈같이 보였던 삶을 살고 있는지 모른다.
실제가 어떻든 나는 감사하다고 생각했고, 여러번 감사의 기도를 했다.
물론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감사하는 마음은 금방 노쇠해져, 그 마음이 쉽게 무뎌지고 잃어버린 탄성때문에 다시 돌아오지 않을 수 있지만 노쇠해진 감사의 마음이 내게 일단 왔으니, 그 마음을 간직하고 가까이에 두고 싶다.
안동댐 어느 곳에 가면 늘 같은 마음이 들 수 있도록,
누군가에게 감사의 기도를 올릴 수 있도록,
그리고 감자양이 나와 함께 해서 견생을 살고 있지만 나와 같이 행복하기를,
그래서 의미를 찾아야 할 순간 무의미를 느낄 때,
이러한 감사가 의미가 될 수 있었으면 하는 한다.
모든 교회가 사람들로 북적이는 일요일 오전,
나는 교회와 먼 곳에서 감사의 기도를 올리며 하늘을 힐끗거린다.
'주절거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쾌활' -쇼펜하우어 (0) | 2024.04.16 |
---|---|
[고잉그레이] 노염색, 탈염색! 진행 중 (2) | 2024.04.10 |
[무엇인가]를 함으로써 [무엇인가]를 배울 수 있다 (1) | 2024.01.28 |
[니체] 값진 삶을 살고 싶다면 (1) | 2024.01.25 |
점점 더 [하찮아진] 것에 대해 (0) | 2024.01.20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