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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조용한 오전이 좋긴 하다

by 발비(發飛) 2024. 4. 9.

'우리를 자기 껍데기 속에 틀어박히게 하는 정념은 최악의 감옥 중 하나다. 행복의 비결은 이것이다. 네 흥미의 폭을 최대한 넓혀라. 그리고 내 흥미를 끄는 사람이나 물건에 대해 적의가 아니라 되도록 호의적으로 반응해라.' - 사이토 다키시, [55부터 시간을 다시 쓰는 중입니다] 중에서

 

오늘 오전은 나 혼자 서울에서 살 때처럼 조용하다. 

조용, 평화, 내 숨소리. 책장 넘기는 소리, 먼데서 들리는 자동차소리, 

전기제품들의 소리만 조금 들릴 뿐, 티비나 라디오 소리가 들리지 않으니 내게는 천국이다.

엄마와 사는 중 가장 힘든 것이 뭐냐고 물으면, 난 소리라고 할 것 같다. 

성격, 라이프스타일, 음식 등도 그렇지만 그 중 가장 큰 스트레스는 소리이다. 

여느 노인들도 다 그렇겠지만 늘 티비를 켜놓고, 티비가 아니면 라디오를 켜 둔 상태이다. 

나는 혼자 오래 살아서 그렇기도 하지만, 혼자 사는 친구들은 그렇지 않다는데 

집에 뭘 틀어놓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저 조용한 것을 좋아한다. 하루에 몇 시간 정도는 티비 예능이나 영화를 보긴 하지만 말이다. 

엄마는 늘 YTN, MBN 뉴스를 틀어놓거나 인간시대, 걸어서 세계속으로 .. 뭐 그런 것들을 계속 틀어둔다. 

YTN, MBN를 종일 듣고 있기가 괴로워 티비로 유튜브 보는 것을 가르쳐드렸더니, 이젠 밤까지 종일 각종 정치유튜브를 틀어놓으신다. 

그 덕에 나는 미니시리즈며, 나혼산, 지구마블 같은 것을 티비로 볼 엄두를 내지 못한다.

나는 예능마니아인데....., 암튼 

조용하지 못하고, 웃지 못하는 삶의 연속이다.

주말농장으로의 잠깐 탈출 성공했지만, 기한이 있는 삶이 아니므로, 앞으로 쭉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 까마득하다. 

내 삶의 스타일이 아닌 방식으로 평생을 살 수 있을까?

내가 원하는 그릇, 컵이 아닌 것으로 쭉

내가 원하는 자리가 아닌 곳에 물건이 놓이지 않은 채로 쭉

내가 원하는 시간대가 아닌 시간으로 쭉

나는 쭉 그렇게 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봄이 오고 있다. 

봄이 오고 왔음에도 창문을 활짝 열지 못하고, 봄이 왔음에도 우리집 어디에도 겨울과 달라진 것이 없는 

이런 것을 견뎌야 하는데 너무 많은 에너지를 쓰고 있어 그야말로 방전만 되는 느낌이다. 

이런 우울함이 어젯밤과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는데, 

엄마는 나의 이상한 기미를 눈치챘는지, 거실 티비를 켜지 않고 안방으로 문을 닫고 들어가셨다. 

덕분에 집이 고요하다.

감자는 내 뒤에서 오전 잠을 한 번 더 자고 있고, 

나는 커피 두 잔을 조용히 마시고, 책 몇 장을 읽었다. 

 

지난 주에 낙동강 근처 골목에 창고로 쓰고 있는 가게를 눈이 자꾸 갔고,

오늘은 눈을 뜨자마자 당근에서 '농막'을 검색했다. 

나는 나만의 공간을 찾고 있는 것 같다. 

나는 그런 나를 내버려둔다.  제풀에 죽던가, 아님 하던가 둘 중 하나겠지. 

 

엄마는 딸의 기분이 별로이니, 티비도 마음대로 켜지도 못하고 어째야 하나 싶겠지만

나는 그래도 조용해서 너무 좋다. 

 

내게 조용한 것은 평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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