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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엄마]를 따라하면서 [구분]되고 [분명]해 지는 시간

by 발비(發飛) 2024. 1. 26.

서울에서 이사를 올 때 기대했던 것이 있다.

엄마의 일상 중 내가 그것을 따라하고 싶은 것, 혼자서도 하면 되지만 의지박약형 인간이라 스스로는 할 수 없었던 것,

엄마와 함께 산다면 매일 잊지 않고 하게 되지 않을까 했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세수하는 것

일주일에 한 번씩 사우나에 가고, 사우나 중 꿀팩을 하는 것

하루 세끼를 정해진 시간에 먹는 것

저녁을 일곱시 전에 먹는 것

저녁시간 맨손체조를 하는 것

 

그 외에도 너무나 많지만 내가 따라하고 싶은 것은 이 정도이다. 

엄마는 내 생각에 자기애가 너무나 강하고, 자기 루틴이 강하게 세팅이 되었고, 그것이 깨어지는 것을 못 참는 사람이다. 

강박에 가까워 함께 하기는 힘들지만, 탐나는 루틴이다. 

 

한 달 반이 지난 지금 나는 따라하고 싶은 루틴을 하나 둘씩 따라하고 있고,

내게도 천천히 루틴으로 자리잡히는 느낌이다. 

엄마와의 합가에서 긍정적인 것들을 찾고, 거기에 조명을 대어 환하게 만들고 싶다. 

의미있는 좋은 결정이었다고, 결과적으로 성공한 선택이었다고 어느 날 생각하고 싶기 때문이기도 하다. 

 

눈을 뜨자마자 세수를 하는 것은 정신이 빨리 돌아오기도 하지만 하루가 시작되었다는 퍼포먼스가 되기도 한다. 

회사를 다닐 때는 그런 저런 생각도 없이 정신없이 세수하고 뛰기 바빴고, 

백수로 서울에서 혼자 지낼 때는 어제와 오늘의 구분이 없이, 날과 날의 구분이 없어 뭉개져 있었다. 

같은 백수이지만 '아침 세수'는 어제와 오늘도 분명히 구분이 되고, 잠과 깸의 구분이 되고, 무의식과 의식의 구분이 되는 일이다.  

세수를 하고 스킨과 로션과 크림까지 꼼꼼히 바르는 것도 엄마를 따라하는 것이다. 

대충이 아니라 별 다른 것은 없어도 이 세가지를 바를 때는 정성껏 시간을 드려 두드리며 바른다. 

그렇다고 피부가 뭐 더 좋아지고 주름이 펴지겠냐마는 나를 위해 뭔가 하는 느낌과 아무래도 좀 더 촉촉해진 건 좋다. 

 

사우나에 일주일에 한 번씩 가는 것, 처음에는 엄마와 함께 갔지만 지금은 따로 간다. 

엄마도 나도 각자 혼자 산 사람인데다가 둘의 관계가 여느 모녀지간과는 좀 다른 점이 있어 각자 가는 것이 맘이 편하다. 

이건 내가 그런 것이 아니라 엄마가 사우나를 가는 목요일이 아닌 화요일 쯤에 나더러 몸이 찌푸등해 하는 나에게 사우나를 가라고 권했다.

그건 엄마가 목요일에 가지 않는다는 건데도 그렇게 말하는 건 뭔가 따로 하자는 사인 같았다. 

또 엄마의 사우나 루틴인 얼굴에 꿀 바르기, 내 목욕가방을 만들라며 하더니 목욕가방에 꿀통을 하나 넣어줬다. 다행히도 둘 다 이태리타올로 등을 밀지는 않는 목욕을 하는 지라 아쉬움은 없다.

우리는 각각 사우나를 가고 있지만 엄마처럼 나도 얼굴에 꿀을 바른다.  

 

하루 세끼를 먹는 것이 가장 힘든 일이다. 

엄마가 떠주는 밥 한공기를 세 번 먹는다는 것은 내 소화력으로는 절대 불가, 일일일식을 하던 내가 세끼를 먹는다는 것, 엄마는 하루 세끼를 정해진 시간에 먹지 않으면 죽을 것처럼 힘들어하는 사람이다. 절대 이해가 안된다. 엄마는 소화력이 너무 좋다. 그런데 세상 연약한 모드로 약해서 세끼를 모두 먹어야 한다고 한다. 어찌 그렇게 먹을 수 있는지.. 난 엄마의 소화력이 대단할 뿐이다. 

나는 세끼를 먹기로 했기에, 밥의 양을 3분의 1로 나눠 끼니 마다 먹는 방법을 썼다. 처음에는 엄마가 밥 한공기 가득한 본인의 밥그릇과  두세 숟가락 분량인 내 밥그릇을 보고 민망했던지 잔소리가 많더니 이젠 받아들이는 듯 하다. 몇 번의 고식으로 고생을 하고 나서야 나는 내 페이스를 찾을 수 있었다. 

세끼를 정해진 시간에 먹었더니, 확실히 부대끼는 것이 줄었다. 

이건 저녁을 일찍 먹고 밤시간을 당기는 일과도 붙어있는데, 속이 편해진 이유 중의 하나가 아닐까 한다. 

 

저녁을 먹고 설거지를 해도 일곱시가 채 되지 않는다. 

엄마는 거실 불을 끄고, 스탠드를 켜고 티비를 켠다. 그럼 한 밤 중. 

일곱시에 한밤 중이다. 마치 깊은 산골처럼. 

엄마가 보는 티비프로그램은, 재미가 없어 나는 내 방으로 들어와 유튜브나 티빙을 보면서 책도 보고 그림도 그리고 운동도 하고 이것저것 한다. 서너시간이 주어진다. 마디가 분명한 시간이다. 

 

엄마는 맨손체조를 오랫동안 했다고 한다. 그런 것 같았다. 

효과가 좋다고 나더러 맨날 하라고 했지만, 시큰둥했었는데, 엄마의 시간표대로 살다보니 심심해서라도 해야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산책시간은 여덟시에서 아홉시 정도의 밤시간인데, 

나는 그 시간에 조금씩 운동을 한다. 뜀뛰기도 하고, 의자에서 발도 까딱거리고, 어깨도 들썩거리고 

뭐 대단한 운동은 아니지만 몸을 의식하는 시간이다. 괜찮다. 아니 좋다. 

 

'엄마따라하기'를 하면서 시간이 구분되고, 그 시간의 의미가 분명해지는 듯 하다. 

하루의 시간이 분명히 구분되고, 시간의 의미가 분명해지는 것,

게다가 직장생활을 할 때 타자에 의해 강제되는 시간이 아닌 자유인으로 시간을 구분되면서 쓸 수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엄마와 함께 살면서 하고 싶었던 첫번째가 어느 정도 잘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 내게는 간만에 긍정적인 일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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