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안에서 보는 바깥 풍경은 가을이다.
나무들은 초록에서 노랗게들 변해가는 중이고, 아파트 사이로 경작해 놓은 텃밭들은 이미 수확을 끝낸 곳도 많이 보인다.
도서관의 실내는 에어컨으로 서늘하다.
그러니 눈에 보이는 것과 피부로 느끼는 것은 깊은 가을의 풍경이다.
요즘 가장 많이 하는 생각은 내가 생각한 계절과 겪은 계절의 차이이다.
8월은 가장 강렬한 여름이므로, 나무나 풀들도 그들의 절정기일거라고 막연히 생각했었다.
7월말부터 나무나 풀들은 내가 아는 가을의 모습이었다.
봄에 심은 상추, 토마토, 오이 뭐 이런 것들은 이미 역할을 끝내고 다음 작물들을 위해 자리를 내 준 지 오래다.
물론, 나같이 초보라 남들보다 늦게 심고, 게으르게 가을 작물 준비를 하고 있지 않은 이들은
작물들의 생노병사를 오롯이 보는 중이다.
다시 돌아가 나는 요즘 이게 여름이라고? 하는 생각을 계속한다.
나는 감당할 수 없는 더위를 견디는 중인데, 식물들은 그 더위 이전에 할 일을 다 끝낸거다.
제 몸에서 초록을 유지시키기 위해 애쓰기 보다는 내가 알던 낙엽 떨어지는 가을을 위해 이미 몸을 말리고 있다.
식물집사라고 하면서 아파트 안에서 사계절 초록인 화분만 키우던 나는
매일 '벌써' 하면서 '그렇구나'하면서 나무와 풀과 텃밭작물들을 본다.
태풍 종다리가 오고 있다고 재난문자가 띵똥거린다.
난 바람을 정말 좋아한다. 그중에서도 태풍.
바람 앞에서 기우뚱거리는 몸을 억지로 세워보는 것을 좋아한다.
바람에 마주서서 한 올도 남김없이 뒤로 넘어간 머리카락의 걸리적거림이 없는 맨 얼굴에 맹렬하게 부닥치는 바람을 좋아한다.
바람을 찾아 태풍예고가 내린 제주도를 찾아가고,
바람을 찾아 깍아지른 듯한 바다 절벽도 찾아가고,
그 곳에서 서서 버텼다고 자부심을 느꼈다.
'야스토미 아유무'라는 분의 <단단한 삶>이라는 책을 보고 있다.
이 분은 '단단하게 자립하는 삶'이란 홀로 잘 서는 삶이 아닌, 수많은 것들에 의지하는 하는 삶이라고 말한다.
의지할 곳이 적은 사람은 종속의 삶을 살게 된다고 했다.
내가 키우던 토분 안의 식물들과 강렬한 여름에 제 잎들을 말리고 있는 과감한 저 나무들.
나는 누구인가,
태풍 종다리가 온다고 하고,
하늘은 점점 검어지고,
나무들은 바람에 흔들리고,
나는 '자립'이라는 말에 꽂혀 노란책을 읽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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