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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절거림

점점 더 [하찮아진] 것에 대해

by 발비(發飛) 2024. 1. 20.

한방 침은 조심스러운 손끝이 내 몸에 닿는 것이다.

한의사의 촉진과 미세한 바늘, 그리고 경련으로 빳빳해진 근육의 신경전이다. 

무술의 합과 같이 서로가 맞아야 한다. 

 

나의 지병이라고 할 수 있는 허리통증.

어느 정형외과에서는 디스크가 보인다고 하고, 정형외과 의사인 아는 동생은 늙어서 그런 거라고 하고,

누군가는 너무 오래 앉아있어서 생긴 직업병이라고 하고.

그렇더라도 정형외과의 약처방과 도스치료는 내게는 별로였다.

 

난 한의원이 좋았다. 

약을 안 먹어도 되고, 다행히 집 가까운 곳에 있는 한의원이 있어서 간혹 다녔는데 괜찮았다. 

본격적으로 통증관리를 위해 침을 맞은지 5,6년, 그 전까지 하면 13년 정도 되는 것이니 믿고 다닌 것 같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 원장님이 티비에도 나오는 꽤 유명하신 분이셨다. 더 좋았다. 

무엇보다 집 가까운 곳이라 컨디션이 별로네 하면 바로 슬리퍼 끌고 한의원에 가서 침 몇 방 맞고 오면 딱 좋았다. 

 

이사를 하기로 하면서 걱정되는 것 중에 하나가 한의원이었다. 

안동에 이사를 오고, 아니 오기 전부터 검색한 것은 엄마네 아파트 근처에 한의원이 있나, 어디를 다녀야 할까였다. 

한의원 분리불안이다.

 

집과 가장 가까운 한의원을 찾았고, 첫 문진시간에 골다공증도 있고, 허리통증이 꽤 오래되었고, 손가락도 아프고.... 말하면서 웃음이 나왔다. 나는 뼈와 관련된 것이 참......................이다. 오랫동안 다닌 한의원이 있었다는 말도 했다. 허리 통증이 가끔 오는데, 일주일에 한 두번 침을 맞으면 괜찮다고, 침 중독이라고 했다. 

침시술 시간. 아팠다. 

전에 다니던 익숙한 원장님의 손길과 새로운 원장님의 손길이 어색하고 불편했다. 

그 불편함은 불신으로 이어졌다. 

열흘정도 2,3일 간격으로 다녔다. 이사 후 짐정리가 계속되며 허리를 무리하게 썼기에 더 자주 다녔다. 

 

다른 한의원을 찾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침을 맞았다. 

하나도 안 아프게 침을 맞았고, 약침이라고 하면서 2차로 또 침을 맞았고, 금방 개운해져서 괜찮나 했지만 몇 시간이 지나자 낯선 주기로 통증이 다시 시작되었다. 아, 아니구나. 

 

어제 나는 안동에 이사를 와 처음으로 방문헀던 한의원으로 다시 갔고, 침을 맞았고, 여전히 좀 아팠지만 익숙해져서 마음이 놓였다. 허리도 부드러워졌다. 

 

낯선 것을 한 번 겪었더니 저의  낯설었던 것이 익숙해졌다. 

 

내 선택은 하찮았다. 그저 상대적으로 익숙한 것, 하던 것이 기준이었다. 

판단의 기준을 가지고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나같은 사람은 선점이 최고인거네. 

먼저 찜하는 것이 늘 선택의 기준이 되는거네. 

침을 맞으며 헛웃음이 나왔다. 

내 선택의 기준이 하찮다는 것을 알았지만 자괴적인 마음은 들지 않았다. 

왠지 적당하다는 생각이 든다.

점점 내가 하찮아지고, 내가 하는 선택 또한 하찮아지고, 내 주위의 것들이 하찮아지고,

하찮은 것들에 미소가 지어질만큼 진짜 하찮다. 

 

어느날 모든 중요한 것들이 사라지고,  하찮음 보다 더 하찮아질 어느 순간을 기다린다.

별 것 아닌 것들의 세상에서 별 것 아니어도 별일없어, 그것이 자유가 되는 어느 순간을 기다린다.

모든 찰라가 자유가 되는 그 순간,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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