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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바로 전] 혹은 [끊임없이 낯선 나]를 위하여

by 발비(發飛) 2024. 1. 12.

-잠시 딴 소리부터-

우리집은 그 당시 지방소도시 중 제법 큰 안동.

위에 오빠, 아래 남동생.

아버지는 공립 중고등학교 국어선생님. 

이런 나열만으로도 뭔가 안정적이고 평화롭다. 

그중 내게 가장 봄날의 햇살 같은 기억은 '탁구'에 관한 것이다.

아버지는 운동을 좋아하셔서 특히 테니스와 탁구를 잘 치셔서 전국 교직원 체육대회에서 입상도 하신 것 같다. 

오빠와 남동생은 그 당시 남학생들처럼 탁구를 잘 쳤지만 나는 못쳤다. 

휴일에 아버지께서 근무하는 학교에 가서 시멘트 탁구대에서 남자들 셋이서 탁구를 치면 나는 늘 구경꾼이었다. 

절대 끼워주지 않았다. 

하루는 울면서 조른 적이 있었는데, 셋이서 네트만 넘기는 것을 배워오면 끼워준다고 했다. 

나는 엄마를 졸라 탁구체육관에 등록을 했지만, 

고입 체력장에서 전교생 중 유일하게 만점을 못 받을 정도로 운동치였던 나는 탁구장에서 세달만에 네트를 넘길 수준이 되었다. 결국 백리턴은 배우지도 못하고....

'나 이제 넘길 수 있어.'

하고 끼워달라고 했고, 한 두번 나를 상대해주던 세사람은 체육관 탁구라며, 그들의 게임이 끝났을 때 서로에게 미루며 몇 번 상대를 해줬다. 늘 탁구에 목말랐다. 

나는 또 탁구장에 등록을 하고 좀 더 배웠지만 태생이 운동치라 늘 그닥이었다. 

하지만 가랑비에 옷이 젖듯 어느새 조금 실력이라고 말할 정도가 되어 지금까지도 어디가면 탁구는 할 수 있는 유일한 운동이 되었고, 즐겁다. 

 

-잠시 딴 소리 끝-

 

탁구경기에서 상대에게 공이 넘어올 때 가장 고점에서 받아치면 아무리 세게 쳐도 상대방으로 넘어가는 공은 힘이 없어 네트를 잘 넘기지 못한다. 

때리는 시점! 

상대의 공이 상승포물선의 정점이 아닌, 상대 에너지의 최대치 품고 있을 정점 직전의 공을 때려야 한다. 

상대의 공격에너지가 최고조에 이르기 직전 에너지와 내가 때리는 에너지가 합해지면 강한 공격이 된다. 

 

스매싱.

 

그 원리를 알고 나서 공에 힘이 생겼다고들 이야기를 했다. 

못 치는 탁구지만 잘 쳐보이는 것은 오직 이것 때문이었다. 

모두들 아는 당연한 기술이겠지만 멋지다고 생각한다. 

 

적 혹은 상대방, 나쁜 것, 나쁜 생각들을 대할 때 그렇다. 

적이 오기 전에, 

나쁜 생각이 내게 행동으로 미치기 전에 때려야 한다. 

 

이때 발휘되는 힘은 상대가 없었을 때보다 훨씬 강한 에너지로 발산이 되어 상대방은 물론이고, 내게도 전달된다. 

 

게으른 생각이나 부정적인 생각은 그 시작은 미약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자기합리화를 통해 마치 당연한 일인 것처럼 나를 속이고, 외부에게 합리적인 것처럼 논리를 만들어낸다. 

일단 반성하고.

 

수많은 자아들 중 부정적인 것들이 형태를 가지도록 내버려두고 합리화시켰던 시간들의 나, 자아는 서랍 깊이 넣어두고, 

그런 나는 몰라, 하고는

마치 낯선 이를 처음 만났을 때처럼 새로운 자아를 생산하고 창조하는 기술.

 

끊임없이 낯선 나를 위해! 

 

 

"나는 내 안에서 여러 개성을 창조해냈다. 나는 계속해서 다양한 개성들을 창조하고 있다. 내가 꿈을 꿀 때마다 모든 꿈이 하나하나 육신을 입고 서로 다른 사람으로 태어난다. 그렇게 태어난 꿈들은 나를 대신하여 계속해서 꿈을 꾼다."

"나는 끊임없이 낯설다"  -페르난도 페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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