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엄마를 용서할 수 있을까?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지금은 '엄마'와 '용서'라는 단어때문에 깊은 절망속에 빠져있다.
할 수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불가항력을 느낀다.
그럴 수 있을 것이라는 나 자신에 대해서도
엄마에 대해서도
불가항력을 느낀다.
괴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았던 캔디가 생각난다.
생이 끝나감을 느낄 때, 나는 깔끔하게 정리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잠시 딴 이야기-
이혼을 한 지 20년이 훌쩍 지났다.
그때 엄마로부터도 그의 부모님으로부터도 나를 지켜주지 못한 그 사람을 용서했다.
어쩌면 용서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는다. 이해했다.
비록 지켜주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했지만, 양쪽 부모님으로부터 스스로를 지켜야 했던 것이 먼저이고,
나는 무기력했으므로, 지금 나는 그가 이해가 된다.
무엇보다도 내 자식들을 그는 잘 견뎌주고, 버텨주고, 지금도 지켜주고 있기에 고맙다. 그것으로 이해하고 용서가 된다.
그와의 앙금은 이제 없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스스로를 굳건하게 지키지 못한 그때의 나에 대해 차라리 미안했다고 전하고 싶다.
-잠시 딴 이야기 끝-
후회하고 싶지 않다. 뭐라도 남기고 싶지 않다.
나는 강박에 가까울 정도록 정리하기를 좋아하다.
내 생이 끝날 때, 혹은 엄마의 생이 끝날 때 둘 사이에 어떤 것도 남아있지 않았으면 한다.
아무 것도 남지 않기를 바란다.
이사를 결정한 이유는 다분히 감정적이었다.
나이든 엄마에게 가서 늙은 엄마를 도와주며 내 안에 있던 엄마에 대한 일들을 하나씩 털어내고 용서를 하고 싶었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이기적인 사람은 더욱 그렇다.
정신과 상담을 받을 때 의사가 말했다.
'한번 만들어진 관계는 절대 바뀌지 않는다. 그 사람은 그렇게 늘 당신을 대할 것이다.'
그랬다. 그 분의 말이 맞았다.
나는 엄마에게 후남이었고, 수자였다.
모두에게 증명하고 싶었던 나.
나는 후남이가 아니고, 수자가 아닌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고 살았다. 그 20년이 나의 서울살이였다.
엄마에게 하나씩 해낼때마다 자랑스럽게 이야기했었다.
귀향을 한 지 열흘, 엄마에게 나는 여전히 후남이었고, 수자다.
엄마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한 사람인지 애초에 관심이 없었다. 사람들에게 자랑을 하고는 자신에게는 휘발시켰다.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는 내가 밥하고 설거지하는 것 외에는 관심이 없지?"
엄마가 대답했다.
"나는 너가 뭘했는지 모르잖아."
자신이 특별한 대접을 받는 것에만 온 신경이 집중되어 있는 사람, 거기에 모든 데이터를 필터링 해버리는 사람.
그 사람이 엄마라는 것을, 아 그랬지.
엄마 옆으로 온 지 열흘이 안 된 지금 나는 다시 깊은 절망에 빠졌다.
중학교때 엄마 옆에 있는 것이 지옥이라 죽음이 무섭지 않았다.
결혼을 해서 그쪽 집에서 엄마의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궁색한 변명을 해야 했을 때 그때도 죽음이 무섭지 않았다.
하지만, 죽음이 실패했다.
나는 적어도 엄마 곁으로 오기 열흘전까지 죽음이 두려웠었다.
왜 죽음이 두렵지...., 삶에 미련이 남아서 인가........, 아니면 혹은 부모에 대한 내 원망이 죽음을 무섭게 만드는 건가...........
죽음이 두렵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엄마 곁에 오면 다시 죽음이 두렵지 않다. 죽고 싶다.
엄마가 지옥이라 나는 지옥을 피해 죽음을 선택하고 싶어진다.
대체 어떻게 이럴 수 있나............,
내 생의 과제인 '용서'
나는 이걸 해내고 생을 마감할 수 있을까.
내일은 크리스마스 이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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