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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어쩌면 여행]일지도

by 발비(發飛) 2023. 5. 18.

매일 아침 8시부터 10시 정도, 그 어느 시간 즈음에 작은 공원에 간다. 

물론 감자의 산책때문이다. 

한동안 아침에는 아파트 놀이터를 돌거나 아파트 주변길을 한 바퀴 도는 것으로 산책을 했더랬는데, 

 햇빛이 뜨거워지고, 날씨가 더워지고 나서부터 바꼈다. 

걷거나 뛰기보다는 바람이 있는 그늘에 앉아 바람을 맞는 산책이다. 

다행히 감자도 벤치에 앉아 주위를 살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기는 것 같다. 

나는 미니패드를 챙겨 이른 아침 소설을 읽는다. 

로맹가리의 <여자의 빛> 

번역소설 특유의 문어체 문장과 단어들이 참 오랜만에 누군가와 격이 있는 대화를 하는 듯한 기분이 들게 한다. 

햇빛이 나무가지 사이로 비껴들어오고, 

감자는 코끝을 벌름거리며 바람냄새를 맡고, 

머리 꼭대기에서는 새들이 부산하게  짹짹거리고,

이른 시간 공원을 도는 어르신들, 그리고 그들의 요양사들.

나는 익숙한데..., 생각하다..., 생각났다. 

여행지에서의 아침산책이 딱 그랬다.

모두가 일상을 살고 있는 시간 여행자는 그들의 시간과는 다른 시간을 살게 된다.

관찰자로 그들을 바라본다.

여행지에서의 이국적인 느낌은, 읽고 있는 소설때문이기도 하다. 

<여자의 빛>의 시작부분,

남자주인공이 우발적으로 머무르고 있는 낯선 곳. 그 시선을 쫓아가고 있기에 더욱 그런 마음이 드는 것도 같다. 

동네공원인데도, 모두가 처음보는 사람들, 그들의 일상.

 

이상할 것도 없이 좋다, 싶다. 

감자때문에 꼼짝도 못고, 다녀왔던 여행지가 티비에 나올 때마다 아득해지는 마음을 붙드느라 용을 쓰고 있었는데, 

그때 그 시간을 좀 더 잘 보냈어야 했는데 하는 마음으로 아쉬웠는데, 

뭔가 그 마음이 녹는 느낌이었다. 

어쩌면 이 시간이 꿈일지도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감자야 고맙다. 너가 만들어 준 시간이다. 

5월의 신록과 뜨거운 햇빛, 시원한 바람, 공원, 일상을 사는 사람들 모두가 만들어 준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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