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見聞錄

[인도] 바라나시 -편지

by 발비(發飛) 2023. 7. 19.

그것은 자아였다. 그 의미와 본질을 알려던 자아였다. 내가 피하려고도 하고 정복하려고도 하던 자아였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정보할수는 없었으나 속일수는 있었다. 다만 그것을 도피하여 한때 숨을 수 있을 뿐이었다.

실제 세상에서 이 자아같이 나의 생각을 괴롭혔던 물건은 없었다. 

헤르만 헤세, <싯타르타> 중에서 

 

영혼의 도시라는 바라나시입니다. 

3일동안 묵었던 게스트하우스에서 나와 다른 곳으로 이사를 했지요.

몇몇 한국인이 있었던 지난 곳과는 달리 이곳은 일본사람들만 묵고 있네요.

그것도 일본의 젊은이들!

그들 사이에서 갠지스강을 보고 있습니다. 

방금 화장터에서 화장을 끝낸 듯한 상주가 나무보트에서 재들을 강가(갠지스의 힌디어)에 뿌리고 돌아갔습니다. 

온도때문인지, 재들 주위로 갠지스 강물이 편편히 펴집니다.

참 오랜 시간이 걸리는군요.

그것들이 윤회의 틀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강가 안으로 완전히 사라지는데..., 꽤 시간이 걸립니다. 

 

바라나시에서 4일째.

지나가는 붉은 천, 오렌지빛 천에 싸인 시체들이 담담히.

타고 있는 그것들도 담담히.

그런데 남녀불문 삭발을 한 하얀 룽기를 입은 상주에게는 아직은 담담하지 않습니다. 

살아있는 것에 대한 연민이 짙다는 것을 영혼의 도시에서 느낍니다. 

 

죽음의 도시이기에 산 것들이 아름다운, 그런 곳입니다. 

 

몸을 맡긴다는 것이 이런 것이 아닐까 합니다. 

갈 곳은 정해졌지만, 갈 때는 모릅니다.

계획이라는 것은 이곳에서 무의미해집니다. 

그저 이곳이 나를 붙잡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좀 더 머무르기로 했지요.

더욱 낯선 곳으로 찾아들어갑니다.

대체 이런 배짱이 어디에서 나왔는지,

한 걸음 옮길 때마다 그저 불운이라는 밟히지 않기만을 기대하며 조심히 발을 뗄 뿐입니다. 

'마리화나'를 속삭이는인도의 어린 것들은 무시하는 것이 최대사명인 날들을 보내면서 있습니다. 

사실 그들이 어린 것들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린 것만으로도 대단한 발전이지요. 

 

세상 속에서 드러내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나를 내놓으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 속으로 들어가는 방법을 찾는 것임을 전, 이곳에 와서 알았습니다. 

내가 세상 속에 어울리는 방법이, 어우러지는 방법이 아직도 몹시 궁금하니.

세상 속에서, 세상 안에서 있을 때만이 이 세상, 저 세상의 구분이 되는 것임을

세상 속으로 내가 들어가는 것임을 서울보다 더 딴 세상에서 ...,

이런 건가 하는 마음으로 하루를 견디고 있습니다. 

 

 

 

 

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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