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 따뜻한 말이나 행동으로 괴로움을 덜어 주거나 슬픔을 달래 줌
"삶보다 더 소중한 것이 무엇이 있을 수 있겠나!
아무 것도, 아무 것도 없지!" -도스토옙스키 [카라마조프의 형제들]
위로를 할 줄 모른다. 는 사실에 며칠 내내 마음이 어둡다
며칠 전 친한 동생이 마음이 괴롭다고 했다. 나는 그 괴로움보다 괴로움을 만든 그 아들이 괜찮다고 했다.
그러니 괴로워 말라는 내 방식의 위로였을거다.
동생은 내 말이 위로가 안 되었다는 항의를 했다.
나는 입을 닫고 말았다.
말하고 싶지 않았다.
어쩌면 말하지 못했다.
위로를 잘 하는 사람은 좋은 사람이겠지.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은 나쁜 사람이 되지 않겠다는 방어를 만들었다.
나는 방어적으로 인간관계를 했고,
'위로'와 같이 하지 못하는 것을 하지 않기 위해 최소한의 관계만 이어갔다.
되도록이면 '위로'조차 말할 필요없는 오래된 관계들, 말하지 않아도 그냥 이해하는 관계만 유지한 것이다.
상대의 몸 혹은 마음이 괴로울 때, 다독거려주는 것이 위로이다.
아킬리스건이다.
나는 좋은 사람이고자 하였으나 좋은 사람일 수 없다.
이웃을 친구를 위로할 줄 모르는 사람이라는 자각을 했다.
나는 위로하는 것에 인색하다.
들어주라고 한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누군가의 괴로운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다.
공감은 가지만 위로에 대해서는 자신이 없다.
더 좋은 사람은 공감을 하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위로를 잘하는 사람이겠지.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없음에 낙담한 것이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위로의 말을 하지 못하는 장애인처럼 느꼈기에 낙담했다.
그리고, 위로가 의무는 아니다.
내게 위로를 요구하는 것, 위로가 되지 않는다고 항의를 하는 것, 나도 고통스러웠다.
다시 살아올라오는 기억들.
어려움을 겪을 때, 나의 행동은 하나다.
입을 닫고, 저 멀리 어딘론가 떠났다.
가까운 이들에게 위로의 말에 대한 기대를 하지 않았고, 그보다 먼저 누구에게도 위로의 말을 기대하지 않았다.
나는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이탈해서 낯선 타국, 타지, 타인들 사이에서 이도 저도 기대도 할 수 없는 곳을 떠났다.
늘 그랬다.
그 곳에서 긴 시간 기억이 퇴색될 때까지, 어찌할 수 없는 포기의 마음이 될 때까지 버텼다.
나는 위로를 요구하거나 받는 것에 익숙하지 못해 나는 위로를 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럼 나는 낙담해야 하나.
또 나는 나의 부족함에 대해 반성해야 하나.
위로의 마음을 제대로 전하지 못한다는 것 때문에, 어디로 떠나지도 못해 깊이 가라앉고 있다.
어제 나는 기도를 했다.
내가 위로를 할 수 있는 아량이 있는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했다.
그 기도는 맞는가?
내 반성은 맞는가?
.... 모든 사람이 36.5도는 아닐 수 있지.
나를 탓하고 싶지 않다. 어쩌지...............
"삶을 위해서 마시는 거야,
사랑하는 형제!
삶보다 더 소중한 것이 무엇이 있을 수 있겠나!
아무 것도, 아무 것도 없지!" -도스토옙스키 [카라마조프의 형제들]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멈춘 [차]에 시동을 걸까 (0) | 2023.01.12 |
---|---|
[심약]이 뭐야 (1) | 2023.01.09 |
[30년] 오빠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0) | 2022.08.05 |
[손가락] 이 아프다. 일을 하면 (0) | 2022.07.21 |
[만족] 오전 9시의 여유 (0) | 2022.07.20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