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12. 22. 무려 16년전 주절거림에 쓴 글을 다시 소환한다.
그때의 내가 지금의 내게,
그때 그 아이에게
https://blog.daum.net/binaida01/10509397
한 아이가 그림을 그리고 있었습니다.
"난 하얀 꽃이 불쌍해!"
왜?
"하얀 꽃은 색이 없는 거니까."
아이가 하얀 크레파스를 들고 하얀 스케치북에다 몇 겹을 칠해 하얀꽃을 그립니다.
.
그 아이가 그림을 그리다 멈춥니다.
"난 까만 꽃도 불쌍해!"
왜?
"까만 색은 사람들이 싫어하니까."
그 아이는 까만 크레파스를 들고 하얀 스케치북에다 얇게 까만 색을 칠해 까만꽃을 그립니다.
예쁘니?
"안 이뻐, 하얀색꽃이 안 보여. 까만색꽃이 그림을 더럽게 만들었어."
그럼 이제 안 불쌍해?
"아니 불쌍해! 근데 하얀꽃이랑 까만꽃 정말 있어?"
아니
하얀 꽃은 있고, 까만꽃은 없어.
둘 다 불쌍한 색인데, 달라.
하얀 꽃은 많아.
하얀 찔레꽃, 하얀 목련, 하얀 무궁화, 하얀 벚꽃, 하얀 라일락, 하얀 백합..... 아주 많아.
그건 말이지
하얀 색은 색이 없는거긴 한데, 세상에서 살고 있는 것들 있지, 사람이랑 나무랑 바람이랑.. 뭐 그런거.
그런 것들은 말이지.
모두 누구랄 것 없이 모두 말이지.
뭔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
하얀 색에다 뭔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
그래서 말이지.
하얀 색은 자꾸 생기는 거야.
세상에 있는 것들이 뭔가 할 수 있도록 계속 하얀 색은 생기는 거야.
꽃으로 모자라서 말이지.
파도도, 눈도, 비누거품도, 바다에서 만드는 소금도, 하얀 머리칼도 자꾸 생기거든.
그런데, 까만꽃은 없어.
사람들이 싫어해서 까만꽃은 없어.
어른이 되어 너가 세상 끝까지 간데도 까만꽃은 없어.
까만 것을 사람들은 싫어해.
밤도, 그림자도, 불타버린 재도.... 까만 것은 말이지.
옆의 것도 까맣게 만들어버려.
까만 크레파스로 머리카락을 그리다보면, 얼굴까지 까맣게 묻게 되는거, 그거.
옆에 까만 것이 있으면 대개는 묻어.
그래서 말이지.
까만 것들이 세상에서 안보이는 것이 좋아. 그런 세상에서 사는 것이 좋아.
얼른 돌아봐.
혹시 까만 것이 있나..... 있으면 발로 뻥 차버려.
그런데 말이지.
까만 것은 세상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 속에도 있거든,
어떻게 마음 속을 보냐고?
만약,
목소리가 작아지고, 걸음이 자꾸 느려지고, 너의 숨소리가 들리고, 볼 수 없는 사람이 보고 싶어지면,
그건 마음 속에 까만 꽃이 핀 거야.
세상에 까만 꽃은 없어.
그러니 마음 속에도 까만 꽃이 있으면 안되는거야.
그럼 하얀꽃은?
너가 파란 바다에 가면 너의 마음 속에 있는 하얀 꽃이 파란색이 되고
너가 빨간 딸기를 먹으면 너의 마음 속에 하얀 꽃이 빨간색이 되고
너가 노란 병아리를 안아주면 너의 마음 속에 하얀 꽃이 노란색이 되고
너가 무지개를 발견하면 너의 마음 속에 하얀 꽃은 무지개색 꽃이 되는거야.
하얀색꽃은 색이 없어서 불쌍해.
까만색꽃은 사람들이 싫어해서 불쌍해.
.
.
.
시간이 가면 저절로 구별 되어지는 것이 있습니다
살다보면 저절로 알아지는 것이 있습니다
묻어나지 않는 하얀 꽃. 묻어나지 않는 그림. 사람 곁에 있는 사람.
-2006.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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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08. 03
(인도여행을 막 다녀온 때인 것 같다)
그 사이 내게 어떤 일들이 일어나, 그 일들 속에 살아,
나는 2006년의 내가 한 것처럼 하얀 꽃 검은 꽃을 잘 정리할 수 없는 마음이 되었다.
아이의 하얀 꽃 검은 꽃이 다시 내게 말한다.
마음에 하얀 꽃을 키우라고,
검은 것이 보이면 발로 뻥 차버리라고.
어느 시간 속의 아이가 수호천사가 되어,
삶에서 가장 힘들고 어려웠었던 때에도 하얀 꽃을 손에 들고 있었던 나를 데려와
지금의 나에게 하얀 꽃 한 송이 주라고 한다.
지금의 내게 마음 속에 품으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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