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을 마시면 2박 3일 죽어야 살아난다. 각오해야지. 알지.
근데 마셨다.
아예 술을 안 마신지는 2년 넘었고, 그 전 몇년은 점심 혹은 오후에 맥주 딱 한잔,
-한 잔은 너무 좋지, 와인 한 잔, 맥주 한 잔 사랑한다.
그리고 시간을 거꾸로 놓고, 그 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10년 이상 전부터 처음 술을 마실 때까지 거슬러올라가 그때쯤은 술을 잘 마셨다.
아버지, 오빠, 동생 모두 술을 좋아하고, 그것도 집에서 마시는 술을, 늘 함께 마시고,
술을 잘 먹는 방법도 전수받고, 술 안 취하는 법도 전주받고,
그래서 나는 꽤 잘 마셨는데, 세월에 장사가 없는지 몸이 약해진건지 이제는 음주불능자가 되고 말았다.
회사를 다니지 않으니 사람구경하기가 힘들다.
대화하는 방법을 잃어버렸을지도, 이래서 안되겠다 싶어
보자는 사람, 맥주 한 잔 하자는 사람이 있으면 모두 예스라고 대답하기로 했다.
그래도 아예 모든 이들로부터 삭제가 되었는지, 뭐.....
이 정도가 딱 좋은 듯 하다.
물 속에 잠긴 듯 침묵 속, 그리고 뭔가 습한 상태가 아니라
한 번 나갔다오면 햇빛에 몸을 말린 것처럼 몸이 쫀쫀해지는 것 같은 느낌이다.
암튼 그래서 그제도 나갔다.
저녁을 먹어야겠다 하는 시간에, 회사일이 늘 힘겨운 선배의 호출, 회사 생활이 힘들어 회사 생활을 포기한 나는,
가장으로서 나처럼 포기도 못하는 선배가 늘 안타깝고, 대단하고, 존경스럽다.
그 선배가 회사일을 마구 이야기할 수 있는 대나무숲이 되기로 했었다.
같은 회사를 다녔으니, 할 수 있는 이야기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가 다른 사람보다 많으니.
목요일은 좀 심했다.
전에 다니던 회사 대표님, 같은 회사를 다닌 선배, 이렇게 셋이서
삽겹살, 횟집, 노래방, 순대국, 편의점 맥주까지 5차! 역대급이다.
홀짝도 쌓이면 말술이 된건가.
그리고 필을 받아, 모두들 집으로 간 뒤, 편의점에 앉아 한참을 있었다.
한 여름밤 번화가 편의점, 비온 뒤 시원함, 알코올이 주는 설레임까지 딱이다.
미친 짓이 간만에 발동했다.
한강을 따라 집으로 가야겠다.
한강으로 떠오는 새벽을 봐야겠다.
깊은 밤을 지나 새벽으로 가는 시간에 한강북단을 따라가다, 양화대교를 건너고 선유도를 가로질러 한강남단을 따라 집으로 간다.
힘들어. 가다 서다, 가다 앉다. 어느새 한강이 핑크빛으로 물들기 시작한다.
마침 그날 내가 입은 옷이 핑크였는데, 난 요즘 핑크에 빠졌는데, 핑크빛으로 물든 한강이라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고래를 생각할 때처럼 나도 딱 그런 표정이었을거다.
그렇게 한강을 따라 성산대교, 월드컵대교, 안양교,..... 저 멀리 가양대교
힘들다. 저 먼데까지 가도 되는데, 그제야 미친 짓을 하는구나, 멈추자.
안양교쪽으로 빠져나와 택시를 불러타고 집으로 돌아와 뻗었다.
지금은 회복 중.
힘들면 자제해야지.
술이 힘들면 이젠 맥주 한 잔만
한강을 걷는 것이 힘들면 스탑.
그런데 말이지.
그게 다 아니니까.................하고 혼자 핑계를 댄다.
거의 6년 7년만에 노래방에서 가서 들국화 노래를 부르며 속이 뻥 뚫리는 마음이었고, 선배들이 부르는 그 때의 그 노래들을 들으며 뭔가 인생이 스윽 하고 지나가기도 하고, 그리운 어떤 이들을 떠올리기도 하고, 이게 유흥이기만 한 건 아니니까.
핑크빛으로 물든 한강을 보며, 오래전 어느 새벽 동해 어느 바다에서 온 세상을 보랏빛으로 물든 뒤 뜨는 해를 맞았던 그때 그 아름다운 시간을 깊은 기억 속에서 현재로 끌어올려놓는 기억의 거풍이 미친짓이기만 한 건 아니니까.
너무 힘들면 자제하는 것이 맞지만...........,
이 아까운 것들은 어쩐다.
사경을 헤맨 하루가 지났으니, 이제 죽을 먹고 기운을 차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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