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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성당] 수호천사

by 발비(發飛) 2022. 7. 4.

토요일 아침에 느닷없이 성진이에게 전화가 왔다. 

 

"내일 성당 가실래요?"

 

"왜?"

 

"가고 싶어요."

 

"왜?"

 

"기대고 싶어요."

 

"어."

 

"내일요."

 

하고 전화를 끊는다. 

 

이 아이는 왜 성당이 가고 싶을까?

 

멍하니 있다가, 다대오신부님께 전화를 했다. 

(스물두 살에 신부님을 오락실에서 만난 이후 신앙에 관해 내가 의논을 한 적은 없었는데)

 

"어이. 발비!"

 

"성진이가 성당을 가자고 해요."

 

"좋은 일이네."

 

"요즘 화살기도를 자꾸 하게 되긴 했는데, 저는 좀.... 아직... 준비가 안 되었고,.... 가기 싫고, 싫은데, 성진이가 어릴 때 복사했던 기억과 기도했던 기억이 좋았대요. 성진이를 도와주고 싶어서 가야겠는데, 저는... 아직..... 어쩌지요?"

 

"수호천사 알아?

누구에게나 수호천사가 있는데, 성진이가 너한테 성당가자고 한 걸 보면 성진이가 너를 이끄는 수호천사인가보다.

너가 수호천사가 이끄는데로 가게되면,

너 또한 성진이의 수호천사가 되는거야.

아들이 엄마의 수호천사가 되고 엄마가 아들의 수호천사가 되는 것보다 더 큰 은혜가 어디있겠어.

야~ 반갑다. "

 

"저는 성당 가기 싫어요. 거기 묻어두고 덮어버린 것들이 너무 많아서, 거기 가면 지옥일 것 같아요. 그게 싫어요."

 

"그렇겠지. 삭히지도 않고 보지도 않고, 한동안 엄청 힘들겠지."

 

"......저는 묵살이 화두였어요. 꺼내고 싶지 않아요."

 

"발비야, 그땐 묵살이 필요한 시간이었을거고, 근데, 그 시간들, 너에겐 생지옥을 언제까지 발비 니 안에다 묻어둘 순 없지."

 

"아. 싫은데.'

 

"너를 지켜주는 수호천사가 때를 맞춰 온 거니까. 믿어봐. 따라가봐."

 

 

사순절에 신부님께서 쓰신 안동주보의 글을 읽어보라신다. 

 

지연이가 오고, 지연이에게

 

"성진이가 성당가자 해, 신부님께 전화했더니 성진이가 수호천사래."

 

"좋네. 언냐 성당 가."

 

성진이가 오고, 지연이랑 성진이랑 같이 밥 먹고, 놀고, 지연이는 가고, 성진이는 자고

 

일요일 아침에 일어나 성당 갈거냐고 물었더니, 가야지. 그런다. 

"신부님한테 전화했더니, 너가 내 수호천사래."

했더니,

"그럼 좋은 거네요. 그냥 같이 가요."

그런다. 

 

성당을 가는 길에, "너는 왜 성당을 가려고 해?" 하고 또 물었다. 

 

"나도 모르게 기도도 하게 되고, 기대고 싶어요."

 

성당에 들어갔다.

20년 만에 둘이서 낯선 성당에 들어가 두리번거리는데,

누군가 와서 처음오셨냐기에 그렇다고 했더니, 

선물이라며 7월 미사책을 건네며 2층으로 올라가라고 했다. 

 

성진이는 영성체가 하고 싶다고 했고, 어떻게 하면 되냐고 묻기에 고해성사를 보면 될 거라고 했더니, 엄마도 같이 하잖다. 

 

나는 싫다고, 나중에 생각해보고 할 거라고 했더니,

 

엄만 뭐가 늘 어려워요. 하면 되지 하면서,

 

그럼 혼자 앉아있기 그러니 같이 앉아 있어 달란다. 

 

나란히 앉아 있는데,

어딜 봐도 이상한 모자의 모습이었는지 수녀님이 오셔서 처음이냐고 물으신다. 

 

성진이는 '고해성사 볼 건데 하는 방법을 잊어버렸어요. 어떻게 해요? 

엄마는 안 보신대요.'

 

수녀님은 성진이에게 이렇게 저렇게 가르쳐주고는 내게 같이 보라고 하신다. 

 

이상한 여자처럼 눈물이 왈칵, 싫다고 하며 또 왈칵, 사연 많은 여자처럼 왈칵, 왈칵.

 

성진이는 못 본척 가만히 앉아있고,

수녀님은 그냥 보면 된다고, 온 김에 그렇게 하는 거라고, 보지 않고 돌아가다보면 볼 걸 하고 생각하게 될 거라고, 영성체를 모시고 나면 잘 했다고 생각할 거라고 등을 쓸었다.

 

어찌저찌 고해성사를 보고, 미사를 보고 영성체를 모시는데, 

마른 밀빵이 입안에서 한동안 녹지 않고 뻑뻑하게 맴돈다. 

 

수녀님께서 어느새 오셔서 하고 싶은 거 원하는 기도면 어떤 거라도 기도해보라고 하신다. 

 

얼마 전 하늘 나라로 간  넬슨과 몇 년 전 하늘 나라로 간 이수일 선생님과 장례식에 가지 못해 늘 미안한 이일훈 선생님과 

너무나 오래전에 하늘 나라에 간 오빠와 몇 년전 온 마음으로 풀지 못했던 아버지, 모든 죽은 이들이 생각했고,

 

보지 못한 상진이와 옆에서 앉아있는대, 무슨 생각인지 잘 모르겠는 성진이의 평화를 생각했다. 

 

그렇게 나는 성당을 다녀왔다. 

 

신부님께서 말씀하신 성진이가 나의 수호천사라는 말씀이 너무 맘에 들어서 믿고 싶었고,

신부님의 말씀처럼 아무 생각없이 성당을 다녀왔다.

 

아직 보속을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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