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記憶)
1. 이전의 인상이나 경험을 의식 속에 간직하거나 도로 생각해 냄.
2. [심리 ] 사물이나 사상(事象)에 대한 정보를 마음 속에 받아들이고 저장하고 인출하는 정신 기능.
아버지는 국어선생님이셨다.
정년 전 15년? 10년 정도는 교감교장으로 계셨으니, 분필로 수업을 하신 건 2, 30년일거다.
아버지, 선생이라는 직업이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긴 참 어려운 직업이었을 것 같다.
그땐 생각해 본 적이 없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아버지는 하고 싶은 것도 많고 호기심도 많으셨던 듯 하다.
컴퓨터가 나오고부터는 컴퓨터가 아버지의 모든 취미들을 싹쓸이했지만, 그 전에는 이것저것 많이도 하셨다.
취미부자, 나처럼 취미부자였다.
만들기, 깎기, 고치기, 키우기
아버지는 저 분필통을 만들어 퇴직할 때까지 늘 가지고 다니시면서 맘에 들어 하셨다.
처음 만들어서 국화꽃을 그리고, 몇 번이나 어떤 기름을 거듭 먹였던 것 같다.
이리저리 보며 뿌듯하게 좋아하셨고,
난 저 분필통을 5년마다 보았을 것이다.
근무하시던 학교에서 새로운 학교로 전근을 가실 때마다 전 학교에서 쓰시던 짐 상자가 2월 며칠동안 집에 있다가 3월이면 새학교에 가져가셨다.
그 시간에 집에서 보았다.
아버지의 학교 짐 상자는 어른들의 세상이었으므로 신기하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몰래 뒤져 보았던 기억도 난다.
대추나무 가지를 깎아 만든 지휘봉과 함께 분필통은 새학교로 가져갈 물건들 속에 있었다.
(마당에 있던 대추나무 가지치기를 하고, 굵은 가지 몇 개를 골라 지휘봉도 만들고, 우리 회초리도 만들고, 먼지털이도 만드셨다)
뒷면에 붙은 동방안경점이 적힌 시간표.
안동에서는 동방안경점이 가장 컸다. 다음은 제일안경점.
동방안경점에서는 시간표를 사은품으로 주었구나. 귀엽다.
분필통 하나로 먼 기억 속에 흩어져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아버지 삶의 한 부분이 쭉 지나간다.
아버지의 늙고 병든 모습이 아니라 맘에 드는 분필통을 들고 이리저리 보시던 나보다 젊었던 아버지의 모습이 기억 속에서 생생하게 재연된다.
지금의 내가 그 때의 아버지를 대면한다.
기억과 현재의 만남이다.
어떨까?
책상머리에 놓인 아버지의 분필통을 보며, 그립다거나 짠한 마음이 아니라
분필통을 만들고, 뒷면에 시간표를 붙이고, 자신의 수업시간을 적으며 자신만의 세계를 만드는데 신이 났을 젊은 선생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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