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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히는대로 詩

[프로스트] 가지 않은 길

by 발비(發飛) 2021. 12. 6.

어제는 조카와 저녁을 먹었다. 

조카는 미국에서 태어나 자랐고, 중학교 입학 무렵 한국에 왔다.

고등학교는 일반고를 다니지 않고 흔히 말하는 대안학교를 다녔다. 

검정고시를 본 뒤, 노량진 재수학원에서 공부하고 이번 입시를 치뤘다. 

어제는 논술시험을 마무리한 것을 축하하는 일종의 '쫑파티'였다. 

 

누가 잘 봤다고 이야기하겠냐만, 

잘 보지 못했지만 재수는 더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나는 조카에게 하나라도 걸리면 그냥 대학을 가서 잘 놀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웃으며 그럴거란다. 

 

한국말을 유치원생 수준도 안되게 겨우 말하고, 쓸 줄도 모르고 와서 잘해냈다고

그정도면 대단한 거라고 동생과 함께 칭찬해줬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다. 

 

스무살,

조카는 늘 여기라고 말할 수 없는 삶을 살았구나 싶었다. 

가족 빼고는, 

본인은 긍정적으로, 그래서 뭘... 하면서 당당히 받아들이는 듯 했다. 

 

며칠전 보았던 이어령 선생의 동행에 관한 이야기를 해줬다. 

한때 대개 유명했던 분이 있는데, 그 분이 말하기를

가족 외에 자신의 삶에서 동행 하나쯤은 있어야 괜찮은 삶이라더라. 

 

그런데..., 하더니

고등학교는 대안학교가 아니라 일반학교를 다녔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은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조카의 괜찮음 뒤에 이런 머뭇거림이 있었던 거다. 

스무살이더라도 수많은 머뭇거림이 있겠지. 

 

프로스트라는 시인이 있는데,  그 사람의 시 중에 '가지 않은 길'이 있다고 했다. 

선택에 관한 시 중에 고모가 가장 좋아하는 시라고.

 

늘 가지 않은 길이 있다는 것, 

선택할 수 없었던 길이 있다는 것.

그것이 상심할 일이 아니라 존재하는 일일뿐이라는 것.

나의 말이 아니라, 누군가의 시로 말해주고 싶었다. 

 

아침에 일어나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 영어 원문 시를 보냈다. 

그리고 한글보다는 영어가 편한 조카는, 나와는 다른 것을 읽어낼 지도 모를 일이다.

 

조카에게 '가지 않은 길'을 보내면서

알 수 없는 여러 갈래 길 앞에서 머뭇거리고 있는 나도 찬찬히 읽어본다. 

 

지금 코 앞에 놓여 한 눈에 보이는 여러 길은

시간이 흘러 먼 훗날이 되면

서로 너무 먼길이 되어 그 끝이 보이지도 않을텐데,

안부가 궁금해도 찾지 못하는 어린 시절 친구처럼

그때 그 길이 있었노라 외에 그 길이 어디라고 말할 수조차 없게 될텐데.

......

늘 미련이 많다. 

 

선택한 길과 가지 않은 길을 포함해서 결국 '삶'이 되는 것임을 

그러니 '선택하지 않은 길'은 '가지 않은 길'이 아니라 '삶의 배경'으로 존재하는 것일지 모른다. 

 

오늘은 어제 다 읽지 못한 <메디슨 카운디의 다리>를 다 읽고,

공동체주택 소모임을 위해 <외롭지 않을 권리, 어울려 살 권리>를 읽기 시작해야 하고,

공유사무실 지원을 위한 서류작업도 시작해야겠다. 

 

 

 

 

가지 않은길

 

R. 프로스트

 

나는 노란 숲 속 두 갈래로 갈라진 길에서 서서
나는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 하며
오랫동안 한 길이 굽이 꺾여져 내려간 곳 까지
몸을 구부려 가며 멀리 바라다 보았습니다.

 

그리고선 하나의 길을 택했습니다.

아까 그 길 만큼 아름답고 어쩌면 더 나은 것 같기도 한 이 길은

풀들이 자라 있어서 사람의 그리 많이 안 다니는 길이었습니다.

사실 다른 길도 풀들이 자라나 있고 

이 길과 별반 차이가 없었을꺼라 생각되지만요.

 

더군다나 그 날 아침 두 길은 모두

그 누구도 밟지 않은 하얀 낙엽들로 덮여 있었으니까요.

아, 첫번째 길은 또 다른 날을 위해 남겨 두었습니다.

길이란 것이 어떻게 다른 길로 이어지는지 알기에

내가 다시 돌아올 수 있을 지 자신은 없었지만요

 

세월이 흐르고 흐른 후 어디에선가

난 한숨을 지으며 이렇게 이야기하겠지요

숲 속에 두 개의 길이 있었다고 그리고 난...

난 하나의 길을 따라 걸었고

그로 인해 모든 것이 달라졌노라고...

 

The Road Not Taken

 
Two roads diverged in a yellow wood, 
And sorry I could not travel both 
And be one traveler, long I stood 
And looked down one as far as I could 
To where it bent in the undergrowth; 
 
Then took the other, as just as fair, 
And having perhaps the better claim 
Because it was grassy and wanted wear; 
Though as for that, the passing there 
Had worn them really about the same, 
 
And both that morning equally lay 
In leaves no step had trodden black. 
Oh, I marked the first for another day! 
Yet knowing how way leads on to way 
I doubted if I should ever come back. 


I shall be telling this with a sigh 
Somewhere ages and ages hence: 
Two roads diverged in a wood, and I, 
I took the one less traveled by, 
And that has made all the differ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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