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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히는대로 詩

[황지우] 뼈 아픈 후회-죽음은 어떤 의미일까?

by 발비(發飛) 2022. 2. 6.

아마 한 달 쯤 '죽음은 어떤 의미일까?'에 관한 생각을 꽤 많이 했다. 

 

꽤 오랫동안 죽음이 두렵지 않았다. 사는 것보다는 죽음이 더 평화로울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스스로 죽음을 택하진 않겠지만,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것으로 다음 생에 이월시킬 삶을 최대한 없애자,

좋은 업을 쌓지는 않더라도 제로로 만들어 다음 삶에는 뭔가 전생의 삶이 이체되어 그 빚을 갚고 있는 듯한 삶을 살지 말자, 가 삶과 죽음에 관한 나의 입장이었다. 

 

그런데 최근 뭔가 의심이 되기 시작했다. 

나의 죽음이 과연 평화로울까?

이 생이 나의 죽음이 평화로울만큼 뭘 한 것이 있었을까?

착하거나 보람찼거나..... 없었다. 

좋지 않았다. 삶이 떳떳하지 않으니 죽음이 두려워졌다. 

 

그래서 죽음에 관한 공부를 좀 하다가. 

두 가지 기준을 찾았다. 

 

하나는 하늘이 무엇을 위해 이 삶을 살게 한지 알아차렸는가? 그 삶을 살았는가?

둘, 부모 혹은 자식과 같이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사람 외에 다른 한 사람을 진심으로 사랑했는가?

 

나는 이 두 가지가 죽음 이후 새로운 삶의 희망이 될 수 있는 기준이라고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천당이던, 내세던, 해탈이던.

헛 살았다. 죽음이 무섭다는 것은 삶에 무게가 없었음이다. 

황지우 시인의 <뼈아픈 후회>가 생각났다.  

 

나는 첫번째 기준인 하늘이 준 품부(稟賦)를 의식하지 못하고 이 삶의 목적지조차 알지 못한 채 그냥 삶을 견디기만 했을 뿐이다. 견디는 것이 최선인 줄 착각했다. 

그래서 착각한 삶의 결과는,  

 

내 가슴속엔 언제나 부우옇게 이동하는 사막 신전;

바람의 기둥이 세운 내실에까지 모래가 몰려와 있고

뿌리채 굴러가고 있는 갈퀴나무, 그리고

말라가는 죽은 짐승 귀에 모래 서걱거린다

   -황지우 <뼈아픈 후회> 중에서

 

 

 두번째 하늘이 맺어준 천륜 외에 단 한 사람이라도 사랑을 다한 적이 있는가? 온 마음을 다해 평생 가꿔온 사랑이 없었다. 이루지 못한 사랑들은 누추한 폐허다. 

 

어떤 연애로도 어떤 광기로도

이 무시무시한 곳에까지 함께 들어오지는 

못했다. 내 꿈틀거리는 사막이,

끝내 자아를 버리지 못하는 그 고열의

신상이 벌곃게 달아올라 신음했으므로

내 사랑의 자리는 모두 폐허가 되어 있다

   -황지우 <뼈아픈 후회> 중에서

 

그동안 황지우 시인의 <뼈아픈 후회>를 몇 번이나 읽었으나 알아채지 못했다. 

사랑에 대한 뼈아픈 후회가 아니라 삶에 대한 뼈아픈 후회로 읽자, 내 삶의 실체가, 미래가 보였다. 

뼈가 저리도록 아픈 것도 문제지만, 두렵고 무서웠다.

 

그래서는 안된다.

그러고 싶지 않다. 

 

삶을 견뎌내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내 삶의 목적지를 지금이라도 찍어보면 어떨까?내 부모와 자식이 아니라 완벽히 객체인 어느 타인을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것은 어떤 것인지 지금이라도 도전해보면 어떨까? 죽음이 코앞에 이르기 전에 이 뼈아픈 후회를 거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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