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에서 만났던 넬슨과의 하루에는 천진한 '내가' 있었다.
삶을 통틀어 가장 행복했던 그 하루에는 천진한 '내가' 있었다.
다음날 포르투를 떠나야 했기에, 어제도 내일도 없는 단 하루였다.
넬슨은 무인빨래방에서 우연히 만났다.
말이 통하지 않았지만 넬슨은 빨래방 앞 카페에서 타르트를 제대로 먹는 법을 알려줬고
삶은 감자를 곁들인 생선요리에 올리브유와 식초를 즉석에서 섞어 드레싱으로 얹어 먹는다도 알려줬다.
구멍가게처럼 생긴 바닷가 작은 카페에서 싸구려 와인 한 잔을 서서 마시고,
처음 들어 예측할 수 없는 포르투칼 음악에 맞춰 절대 자유를 온 몸으로 느끼며 춤을 췄던 작은 클럽.
나는 내 안에 오래도록 숨어있었던 나를 끄집어내어 같은 시간과 공간에 있었다.
나와 내가 함께 그곳에 있었기에 그 하루는 뭘해도 무섭지 않았다.
심지어 넬슨이 바다 절벽 위에서 내 발목을 잡고 거꾸로 흔들었을 때도 무섭기는 커녕 진정 자유로웠다.
그 무애함을 만끽하였다.
'여기' 그리고 '내'가 분명히 있었던 세상
나의 몸에서 포르투칼 리듬이 채 떨어지기도 전 포옹으로 작별인사를 건넬 때
넬슨처럼 나도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넬슨과의 작별이 아니라 단 하루 뿐이었던 '나'와의 작별이기도 했다.
나는 기억 속에서 넬슨과 함께 했던 '나'를 떠올렸고,
앙리 마티스의 '춤' 판, 군무 가운데 투명인간이 되어 갇힌,
'저기' 저들이 만든 원에 둘러싸인 '나'를 본다.
Here I am
단단하게 잡은 저들의 손깍지를 벌려 끊고, 내가 오고 있다.
침묵 속에 들리는 나의 목소리 'Here I am'
내게 다가오는 '나'는 의지가 아니라 그저 '존재'를 드러낸다.
내가 바라보자 '나'는 '존재'의 빛이 드러난다.
나와 내가 만나 존재를 이룬다.
나와 내가 만나 삶을 만든다.
노력, 의지를 '0'점으로 맞추고 원래 하나였을 천진한 '나'로 초기화시킨다.
어차피 저들 눈에는 보이지도 않을 '나'를 여기로 부른다.
Here I am!
...........
노력(努力)이라는 말을 쓰지 않기로 한다.
'의지'가 아니니 기꺼이 '포기'한다.
종 '노'奴에 힘쓸 력'力', 더하기 힘쓸 력'力'
'노력'이라는 말은 한자 그대로 푼다면, '종'이 온 힘을 다해서 일을 하고 또 또 일하는 것을 노력이다.
-잠시 딴 소리-
남자 종을 가리키는 '노'奴에도 여자가 있고, 여자 종을 가리키는 '비'婢에도 여자가 있고,
패미니티스트가 아니라도 그 오랜 시간,,, 여자는, ...싶다.
이제 할 수 없는 노력을 접고,
그저 '여기'에 나를 데려다 놓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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