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는 반나절 여행을 가보기로 했었다.
난 늦잠을 잤고,
친구는 '오늘 비가 많이 온대.' 라고 했다.
그냥 있자.
그리고 오후가 되자마자 비가 오기 시작했고,
억수비로 오다가, 보슬비로 오다가,
잠시 쉬다가,
또 억수비로 오다가, 보슬비로 오다가,
그렇게 비가 오는 사이 몇 달만에 베란다 문을 닫을 정도로 서늘해졌다.
'여름이 가는 구나.'
기다리거나 기다리지 않는 가을이 섬뜩하게 불쑥 코 앞에 있다.
커피수업을 가기 위해 생활방수가 되는 자켓을 걸치고 나갔다 왔다.
-잠시 딴 얘기-
커피 수업에서 선생님이 맛난 쿠키와 초콜릿을 나눠주셨는데,
처음, 거절
두번째, 모른척
세번째, "초콜릿에 의지하지 않겠습니다!"
(모두들 웃었다. 왜냐면 나는 추출 커피의 농도가 진해 수율과 함께 맞추느라 고전 중이었다.)
-잠시 딴 얘기 끝-
비는 오후에 집을 나설 때도, 커피수업을 했던 저녁에도, 집으로 돌아온 한밤 중에도 계속 내렸다.
이번 주 내내 내린다고 한다.
에어프라이어에 고구마를 구웠다.
서늘하고 축축한 공기 속으로 군고구마 향이 빠르게 스며들어 온 집이 고소했다.
오늘은 고소하고 따뜻한 고구마가 딱 어울리는 날이다.
벌써 그렇게 되었다.
비가 오는 것도 괜찮고
서늘한 날씨도 괜찮고
해가 짧아지는 것도 괜찮은데
가을이 오고 겨울이 오는 것은 두렵다.
어디에서 어떻게 살지 아직도 결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삶의 전환기에 길 잃은 아이처럼 멍하게 머뭇거리는 날들.
느닷없이 비가 많이도 내렸고ㅡ 고구마 반개에서 뿜은 고소한 향이 순식간에 온 집을 채웠다.
비와 고구마향이 섞여 고소한 비가 되던 날,
따뜻하고 고소한 고구마를 두 번에 나눠서 베어먹었을 뿐인데 발바닥 주위에서 무엇인가 스멀스멀 덩굴진다.
덩굴진 발에 힘이 주어진다.
고소한 고구마가 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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