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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55-가로 막힌 몸

by 발비(發飛) 2021. 4. 29.

[55부터 시간을 다시 쓰는 중입니다] (사이토 다카시)를 펴놓고 읽으려다 

읽지도 않고 일기를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단 한번도 겪지 못했던, 생각지도 못했던 막막한 시간이 계속 되고 있다. 

거대한 몸이 막고 있다.

갱년기라고 해야 하나. 

아님 몸이 망가진 거라고 해야 하나.

일체유심(一切唯心)이라고 생각하고 온 마음으로 몸을 움직였다.

일체유체(一切唯體)였던 거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8개월이라는 짧은 회사를 정리하던 마지막날은 저자에게 인수인계 메일을 보냈다.

30명이 넘는 저자에게 메일을 보내야 하는데, 두 명의 저자에게 메일을 보내고는 손가락이 빠질 듯이 아파 눈물이 났다. 

 

퇴행성 관절염이라고 했다.

골다공증이 있어 몇 년째 약을 먹고 있었지만 이런 종류의 미칠듯한 고통은 처음이다.

여자가 아이를 낳을 때 최고의 고통을 경험한다고들 이야기하지만 나는 그때보다 더 고통스럽다는 생각을 한다. 

그 고통은 끝이 있는 고통이며, 의미있는 고통이며, 생산에 대한 고통이다. 

지금의 고통은 죽음이 앞에 있는 노년을 향해 가는 소멸의 시작을 알리는 고통이다. 

더한 고통이 남아있을 수 있다는 것. 

견뎌야 할 의미를 찾아낼 수 있을까?

이 시기가 지나면 나아진다고들 한다.

어제는 재래시장에 가서 뼈에 좋다는 한약재를 사왔다. 

알약을 삼키는 것을 미칠듯이 싫어하는데, 뼈와 갱년기에 관한 영양제를 하루에 세 번 먹는다. 

삶이 누군가에게 민폐이면 안되는 듯이

죽음 또한 누군가에게 민폐가 되면 안 된다. 

온힘을 다해 몸을 조그맣게 말아야겠다.

키 낮은 들풀처럼. 

 

공방 선생님께서 한 번 나오라는 전화에 오랫만에 공방에 다녀왔다. 

그 사이 손이 굳었을지 모르니 옷을 다시 만들었으면 하셨다. 

대답을 않고 딴 이야기만 하다가

사실은요, 손가락이 아파요. 한동안 손을 쓰지 말래요.  손을 쓰면 손가락이 굽는데요. 

수다처럼 이어진 이야기는,  음식을 그렇게 가리더니, 끼니를 제대로 안 챙기더니 하는 타박과 함께 

뭘 먹어라 뭘 먹어라로 이어졌다. 

집으로 돌아와 함께 저녁을 먹은지 얼마되지 않았는데도 바나나와 토마토와 두유를 먹었다. 

 

다음주부터는 아쿠아로빅을 다닌다.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내려와 차를 운전해서 회사 주차장까지. 

의자에 앉아 화장실 몇 번

회사주차장에서 아파트 주차장까지.

 

석고가 되어버린 몸이 물에서 풀릴까. 풀어야지. 

 

이 책의 뒷표지에는 '55부터 '나'를 위한 진짜 시간이 된다!' 이라고 적혔다. 

그럴리가, 하면서 작은 따옴표로 감싸진 '나라는 글자를 보게 된다. 

그럴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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