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딴 소리-
주간님은 작년에 반백수가 되었다.
내가 그 출판사에 근무할 때 주간님으로 나의 상사였던지라 나는 지금도 주간님이라 부르고,
그 때 내 직급이 팀장이라, 주간님은 지금도 이팀이라 부른다.
주간님이 30년째 근무하던 그 해에 출판사는 그럴 일이 아닌 부도가 났고, 그 때부터 일주일에 한 두번만 출근을 한다.
주간님은 자기가 백수라고 늘 이야기하지만, 내가 보기엔 반백수다.
반백수가 부러운 백수 .
-잠시 딴 소리 끝-
반백수가 늦은 밤 메시지를 보냈다.
-내일 우리 서해 보러 갈래요?
-그러시죠.
-태안갈까요?
-거긴 멀어요. 무의도 가시죠.
-좋아요.
-근데 저 손가락과 손목이 아파 운전은 안 하고 싶어요.
-제가 할게요.
그래서, 백수와 반백수는 평일 아침 만나 무의도로 반나절 여행을 갔다.
퇴행성관절염이라고 엄살을 떤 덕분으로 운전은 반백수가 하고, 여행의 경험이 좀 있는 백수는 가이드를 했다.
무의도-실미도-무의도-소무의도
무의도는 다리가 놓이기 전부터 배타고도 자주 가던 곳인데. 다리가 놓이니 쉽긴 쉽구나 했는데,
다리 때문인지 무의도는 공사중이었다.
공사 중이라 엉킨 도로를 이리저리 돌아, 실미도유원지로 오니 차라리 고요하다.
바닷길은 지금까지 가 본 중에 가장 넓게 열려 있어, 마치 내가 왔던 그 섬이 아닌 듯 하다.
그래서 전날의 기억들이 덮어쓰기 된다.
늘 실미도 물길 쪽에서 오른쪽 해변을 돌던가, 왼쪽 해변을 돌던가 하였다
기억 덮어쓰기 한 김에 반백수에게 가슴떨리는 제안을 했다.
-섬을 가로질러 저 너머 바다-로 가보실래요?
-좋아요.
나를 믿는 듯 하였지만, 나는 실미도를 가로지른 산의 높이가 얼마나 되는지,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리는지 정보가 없다.
물길은 서너시간 후에 닫힌다고 했다.
갇힐수도, 있었다.
살짝 간이 떨렸지만 내색하지 않고, 섬이 콩알만한 하니까요.
섬은 콩알만했다.
곧 하늘이 보이고, 앞바다와는 다른 출렁이는 큰 바다가 보였다.
더 조용하고, 고요한 바다다.
바위마다 다닥다닥 굴과 조개들이 틈없이 붙어있다.
다닥다닥 붙어있는 바위 위에 작은 소풍 자리를 깔고 나란히 앉아 바나나와 커피를 마셨다.
엉덩이가 아플 것 같았지만 앉고 보니 아프지 않고 따뜻했다.
엉덩이에 심한 자국만 남았다.
아프지도 않았는데 몸에 남은 자국. 그럴수도 있구나. 했다.
나중에 반백수님이 으스스했지만 좋았다고. 했다.
나도 으스스했지만 좋았다.
이렇게 고요하여 틈만 나면 나른한 이곳에서 생과 사가 처절한 일들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생각했다.
틈만 나면 나른한데..., 처절할 수 있을까?
온 길을 거슬러 나오는데 봄나무 어린 잎들에 햇살이 가득했다. 이런데 처절할 수 있을까?
실미도를 나와 무의도 하나개 탐방로를 걷고,
데침쌈밥이라는 건강한 밥을 두 공기나 먹고,
소무의도 다리를 건너 찻집에 앉아 수다를 떨었다.
시간이 오래구나
이 분과 이렇게 긴 시간을 그렇지, 그렇지 하며 수다를 떨 수 있는 시간을 가졌구나.
백수는 오늘도 봄 햇살이 하도 나른하여, 백수의 절박함을 잊어버린다.
그러면 안 되는데,
모든 퇴사는 상처이고, 봄은 퇴사하기 좋은 때이다.
햇빛에 꼬닥꼬닥 상처를 말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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