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옆 자리에 누워 곧 잠이 들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처음에 엄마가 엄마집에서 다니라고 했을 때 고마웠어요. 근데 지금은 좋아요."
나도 잠이 들려던 참이라 흘려들었다.
말에도 힘이 있는지 그대로 흘러가지 않고 가슴에 내려앉았다.
잠이 깨고, 아이를 보았다.
그새 잠이 들었다.
그 밤에는 차마 잠든 아이를 깨우지 못해 무슨 뜻인지 묻지 못했다.
아침에 아들이 이른 출근을 하고,
나는 여전히 "고마웠어요. 좋았어요" 이 두 말에 사로잡혀있었다.
아들이 며칠 뒤 다시 왔다.
여의도 현장이 다 끝나간다고,
그래서 이제 엄마 집에 자주 오지 못할 것 같다고 걱정을 한다.
분당에서 여의도 현장까지 다니는 것이 힘들어 편하려고 엄마집에서 다니고 싶다고 했었다고,
어떤 마음이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그렇게 봄과 여름이 가는 시간 동안 몇 번은 좋았고, 몇 번은 싸웠고, 대개는 일상인 시간을 보냈다.
아들은 이 모든 시간이 자신의 인생에 참 좋은 시간이었던 것 같다고 몇 번 이 이야기했다.
나는, 처음에는 무서웠고, 지금은 좋았다고 했다.
아들은 내가 무섭다고 한 것을 아직 이해하지는 못하는 모양이다.
나는 오랜 시간 아들이 그리웠고, 미안했지만 아들과 직면하는 것이 두려웠다.
아들에게 쌓여있을 나에게 대한 정체 모를 어떤 것이 나로서는 감이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린 나이에 자신에게서 떠나가버린 엄마의 마음을 나는 가늠할 수 없었으므로,
미안함보다 그 아이의 마음 깊은 곳에 알 수 없는 크기의 덩어리가 터진다면? 무서웠다.
무서움을 혼자 넘을 수 없을 것이다.
아들은 밀고 들어왔다.
처음에는 한 마디 한 마디가 모두 그 아이의 가슴 속에 있을 덩어리처럼 느껴졌다.
한 마디의 말이 한 가마니의 거대함으로 가슴을 눌렀다.
몇 번인지 모른다.
서로가 서로에게 사과를 했다.
그렇게 시간이 가고, 다음 주 다다음 주면 여의도 현장이 끝난다.
나는 아들과 달리 무서웠으나 좋았고, 고마웠다.
사랑시 1
허연
걸어서 천년이 걸리는 길을 빗물에 쓸려가는 게 사랑이지.
-시집 [내가 원하는 천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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