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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집사 식물집사

[반려식물] 뿌리가 떠 있다

by 발비(發飛) 2020. 7. 5.

 

뿌리가 떠있다. 

우리집 반려식물들 중 떡갈고무나무, 호야, 행운목을 빼고는 대부분 행잉식물이다. 

애초 바닥에 두는 화분은 아무래도 걸리적거리니까. 행잉으로 키울 수 있는 박쥐란종, 디시디아종들로만 골랐다. 

 

퇴사를 하고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 있게 되면서 이 아이들을 보는 시간이 늘어나니 마음이 달라졌다. 

제법 운치있게 보이던 이 아이들이 힘겹게 매달려있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이쁘다 생각했던 전과는 달리 어느 때부터 나도 함께 매달려있는 듯했다. 

일주일에 한 번 내려놓고 물을 흠뻑 주고 나면 뿌듯했던 전과는 달리 제자리에 매달때면 팔에 힘이 들어갔다. 

 

한 달 전쯤 결단을 내리고 화분선반을 사서 좀 큰 아이들은 내려놓았고

아주 작은 아이들은 떡갈고무나무 큰 화분 위에 내려주었다. 

아직 세 개의 화분은 매달려있지만 그나마 내려앉은 아이들을 보면서 마음이 어느 정도 편안해졌다. 

내 마음이 맞았다. 

아이들이 내려오자부터 아주 신이 난 듯 보였다. 

심지어 뿌리와 상관없는 틸란디시아도 쌩쌩하다. 

행잉식물들은 잎과 줄기가 아래로 쳐지는 애들이니 가능한 건데, 내려오자 잎과 줄기가 위로 올라가고 있다. 

가는 줄기를 빳빳하게 세우고 위로 치솟는다. 

화분 곁에 앉아서 살펴보니, 새로운 줄기들이 꽤 많이 빠르게 올라오고 있었다. 

보기 좋았다.

'매달려있기 싫었던 거구나.' 

다행이다.

그런데,

이를 어쩌나.

새 잎과 줄기가 위로 세차게 올라가는 사이 아래에 있는 줄기는 떡갈고무나무 화분에 뿌리를 내고 있었다!

디시디아의 작은 뿌리가 마사토를 꽉 잡고 있다. 

 

틈만 나면 뿌리를 내리고 싶은 본능, 너와 나 다르지 않았다. 

 

그동안 이 아이들은 흙대신  '바크'라는 나무껍질에 심어두었다.

가벼워서 행잉으로 두기 좋아서인지 행잉식물 재배법에 대부분 그렇게 나와있었기에 그것이 최적일 거라고 생각했던거다. 

흙에 닿은 덩쿨에서도 뿌리를 내리고,

화분 물빠짐 구멍 사이로도 뿌리를 내리고.

조그만 아이가 온힘으로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마음이 '쿵'하고 내려앉았다. 

덩쿨식물. 이 아이들은 매달려서 잎들을 아래로 떨어뜨리는 것이 매력이지만

잘 생각해보면 땅바닥에 잎과 줄기가 닿는 곳마다 뿌리를 박으며 누구보다 땅의 면적으로 차지하던 아이들이었고,

큰 나무에도 뿌리를 박으며 타고 올라가 결국 나무를 죽이기도 하는 아이들이다.

뿌리에 대한 욕구가 어떤 식물에 못지 않은 아이들이라는 것을 생각도 못했다. 

 

이 아이들도, 선반에 있는 아이들도 흙 화분에다 옮겨줘야겠다.

이 아이들이 이미 화분의 지분을 차지하기 시작한, 이미 타고 올라가기 시작한 떡갈고무나무도 구해야 한다. 

마음 편하자고 바닥에 내려놓은 것이 능사가 아니었다. 

모두의 뿌리가 떠 있었다. 

 

마사토를 꽉 잡고 있는 디아시아의 뿌리.

 

아들이 일주일에 서너번은 자고 간다. 

현장에서 가깝다는 이유하는 이유를 대면서 곁에 있다.

이미 성인이 되어 직장에 다니고 있는 아들이 코를 골며 곁에서 자는 것을 본다. 

얼굴은 하얗고 노곤하다.

베개를 바로 해준다는 핑계로 아이의 머리카락을 만진다. 

나는 20년 동안 아들의 소식을 모르다가 알다가...., 

내 생각에 아들은 20년 동안 대부분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않고 여기저기 떠돌다가....,

처음에는 일주일에 한번.

지금은 일주일에 서너번.

 

아들은 마사토를 꽉 잡고 있는 디아시아의 작은 뿌리처럼 

나는 한 두 잎이 누릇해진 떡갈고무나무처럼

우리는 둘 다 조금은 무섭고 조금은 셀렌다.

 

아들의 운동화를 빨아서 햇빛에 널어두었다. 

 

오후에는 마트에 가서 마사트와 배양토를 사야겠다.

한 아이씩 분갈이를 시작해 편히 제 집에서 뿌리를 내릴수 있도록 도와주고,

누릇해진 갈고무나무 잎은 얼른 잘라 보기 좋게 자라게 도와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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