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럴줄 알았으면, 진즉에 흙화분에 심을걸!
행운목을 수경으로 장장 일년간을 키우다가 화분으로 옮겨심은 것이 지난 3월이다.
두 달동안 매일 자라 이제는 짙푸른색 잎을 가진 행운목이 되었다.
사진이 없지만, 수경재배를 하는 동안 껍질 사이를 뚫고 나오려고 하던 폼만 잡던 움은 일년간 그 모양 그대로 애만 쓰고 있었다.
원래 이 행운목은 비실비실인가보다 하고 그냥 세월아 네월아 보는 듯 마는 듯
물만 겨우 바꿔주었었다.
그때의 마음이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아마 '속으로는 '저걸 어쩌나' 하는 마음이 있었는지,
3월 어느날에 집에 있던 빈 화분에 퇴비흙을 담아 이사를 시켜주었었다.
몇 달이 지난 오늘 아침에 보니 짙은 초록잎에서 청년의 향이 났다.
성장.
물에 있던 것을 흙에 심으니, 움에서 잎으로 가열차게 자라기 시작했다.
물과 흙이 행운목의 의지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성장이란, 성장하는 개인 또는 문명이 차츰차츰 스스로의 환경, 스스로의 도전자, 스스로의 행동영역이 되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즉, 자기 결정의 능력이 증대한다는 그것이다. -A.J. 토인비 [역사의 연구] 중에서
토인비는 성장이란 스스로 주체가 되어 자기 결정능력이 증대한다고 했다.
성장이라는 단어에는 '스스로'라는 숨은 필요조건이 포함된다.
스스로 의지하지 않은, 성장은 없다.
행운목이 1년이 넘도록 움만 틔운 채 어쩌지 못하다가 스스로 잎을 펼 수 있게 만든 힘,
물과 흙의 사이에 무엇인가가 있었을 것이다.
행운목은 지금 성장에 대한 자신감을 가지고 스스로, 제 의지로 잎을 크게 펴고 있는 듯 하다.
퇴사한 지 반년, 나는 앞으로의 삶에 '성장'이라는 단어보다는 '순응'이라는 단어를 선택했다.
어쩌면 순응은 물에 담궈놓은 행운목과 같은 것일지도,
살아있고, 살았으므로 최소한의 움직였고, 그 움직임은 멈춤에 가까웠다.
식물이 아닌 나를 타인이 옮겨심을 수 있을까?
사람인 나는 나를 옮겨심을 수 있을까?
인간의 '발전'은 다른 자원들과는 달라서 밖으로부터는 어쩔 도리가 없는 것이다. 인간의 '발전'이란 항상 '성장'이고, '성장'은 언제나 안에서부터 이루어지는 것이다. P.F. 드러커 [현대의 경영]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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