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분갈이를 했다.
큰 화분 하나, 작은 화분 둘.
한 달 쯤 전에 포토스 화분이 깨졌다.
현관 안쪽에 걸어둔 봉에다 포토스 화분을 걸어두었는데,
옆쪽 방문을 아무 생각없이 벌컥 열다가 뚝! 떨어졌다.
화분은 깨지고, 포토스는 겨우 깨진 화분에 붙어있었다.
당장 어쩔 수 없어 깨진 화분에 박스테이프를 붙이고
이번에는 천정에 걸지 않고, 화분대에 올려두었다.
한 달 사이 싱싱하던 초록잎이 조금씩 누렇게 변해갔다.
수북하던 잎들이 성글어졌다.
죽어가는 것일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화분을 살 때 맘에 들었던 것과는 달리, 품위가 있지 않아 약간 외면했다.
확, 죽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한 번은 했던 것 같다.
-잠시 딴 소리-
주말에 조조로 [신과 함께]를 봤다.
[페터슨]을 다시 보고 싶었는데, 상영관이 없었다.
늦었지만 [강철비]도 보고 싶었는데, 상영관이 멀다.
할 수 없이 끼적거리며 미뤄둔 [신과 함께]를 보기로 한다.
명분은 대중의 시선, 대중의 기호를 알아본다.
억지 반성,
특히, 천륜관문! 세상의 모든 부모가 선善일 수는 없다.
善:
올바르고 착하여 도덕적 기준에 맞음. 또는 그런 것./ <철학>도덕적 생활의 최고 이상.
모두 선善일 수 없는 부모에게조차 적용되는 사회적, 도덕적 억압 때문에
수 많은 자식 희생자가 있고,
그 희생자가 가해자가 되고, 그 자식들에게 상속되는 일들이 뉴스분석이나 다큐프로그램에서 검증되고 있다.
그런데도, [신과 함께]를 본 사람들이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무서워, 죄를 짓지 말자. 착하게 살자, 고 생각한다는 것은 결코 좋지 않다.
특히 어린 아이나 청소년들에게 쓸데없는 짐이나 죄의식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반성을 고착화시키는 것은,
모든 문제를 사회 제도가 아닌 개인의 선악 문제로 뭉개는 것은 독재국가에서나 할 짓이라고 생각한다.
2017년을 지나 2018년, [신과 함께], 반성의 왕국을 꿈꾼다.
감동과는 구별되어야 하는 감정.
반성의 전제는 죄,
죄의 결과는 벌,
벌을 받지 않기 위해, 죄를 짓지 않아야 하며, 죄를 짓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반성한다.
부모는 자식에게, 국가는 국민에게, 어른은 아이에게, 목사는 신도에게,
모든 위에 있는 것들은 아래를 향해 죄의식을 불어넣는다.
죄의식의 올가미를 씌워 가둔다.
자식은 부모에게 늘 미안해하고 말하고,
교회에서는 내 탓이오 하면서 가슴을 치고,
국가는 영웅을 내세워 개인을 밟는다.
그냥 한 편의 영화일 뿐이라고 하겠지.
내 불편함의 근원이 있겠지.
나는 반성하게 하는 것들에 대한 불편한 마음으로 영화를 봤다.
나는 인간의 자유 의지를 믿는다.
그 자유 의지의 원인 혹은 결과가 선과 악이 아니라,
선택이고, 선택의 책임이라는 것을 믿는다.
[신과 함께]에 반론을 제기하는 이유이다.
다만, CG기술은 엄청난 발전을 했구나 싶었다.
괴물에 비하면 이건 뭐, 부산행에 비해서도 엄청난 발전이다.
CG가 재미있었다.
-잠시 딴 소리 끝-
혹시 나도 모르게 영화 후유 증상으로 반성하게 될까 봐 조용한 집으로 가기 싫었다.
올리브영에 괜히 들러 피부에 수분을 채워준다는 차앤박의 프로폴리스 에센스와 수면팩을 사고,
다이소에 들러, 분갈이를 하면서 보충할 흙을 사고,
홈플러스 상가 안에 있는 화원에서 화분을 몇 개 샀다.
이 겨울에 분갈이를 왜 하냐는 화원 사장님의 물음에
우리 집 포토스는 어찌 해도 잘 살 것처럼 무식하게 생겼는데, 왜 골골거리는지 모르겠다고 혹시 원인을 아느냐고 되물었다.
사장님은 잘 사는 앤데 왜 그러지 갸우뚱한다.
아차 싶어, 천정에 매달아뒀는데, 떨어진 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거라고 한다. 식물은 어떤 것이랄 것도 없이 예민해서 그런 충격을 받으면 힘들어 한단다.
확신에 차서 그거라며, 분갈이를 하거든 화분도 옮기지 말고, 한동안 한자리에 가만히 두라고 하신다.
갑자기, 어렸을 때 어느 전봇대에 머리를 부딪혀서 띵한 것 이상, 세상이 빙빙 돌았던 기억이 났다.
애도 그런 거였다는 생각을 하자, 한 달 내내 시름시름 앓던 그 모양새가 아이쿠 싶었다.
화장품에, 분갈이용 흙에, 큰 화분 하나와 작은 화분 두 개, 무거웠다.
무거운 짐을 낑낑거리며 집으로 돌아오니, 마음 속에 불편했던 [신과 함께]를 까맣게 잊었다.
사우나를 다녀오고, 저녁을 먹고 나서 분갈이를 시작했다.
신문과 박스를 깔고,
분갈이용 흙을 뜯어놓고,
깨진 화분에서 포토스를 떼어놓는다.
깨진 화분 안에 흙은 별로 없고, 뿌리만 한 가득, 자기들끼리 엉켜 있었다.
원래도 그리 많지 않았을텐데, 생각해보니 떨어지면서 흩어진 흙을 그냥 쓸어 버렸었다.
누렇게 변한 잎들을 모두 잘라냈다. 반 이상이었다.
큰 화분이라고 샀는데, 한 뭉치인 뿌리를 넣으니, 그리 크지도 않았다.
새 흙을 1/3을 채우고, 포토스를 살짝 들고 그 틈 사이로 흙을 천천히 밀어 넣었다.
싼 티 나는 포토스에 까만 도자기 화분이 좀 과하다 싶었는데, 제법 귀티가 난다.
작은 화분 두 개도 하는 김에 아주 조금 더 큰 화분으로 옮겨 심었다.
욕실에 옮겨 미지근한 물을 주고,
가라앉은 흙 높이만큼 흙을 좀 더 채웠다.
추운 날이라 걱정이다.
화원 사장님의 말씀처럼 한 달은 그대로 둬야겠다.
물을 줄 때도 화분을 옮기지 말고, 화분 자리로 가서 물을 줘야지.
뇌진탕에 걸린 사람처럼, 제 자리를 잡을 때까지 가만히 둬야지.
천정에 매달린 모든 애들이 떨어지지 않도록 조심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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