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어제도 피곤이 풀리지 않는다.
그제 패턴을 그리고, 재봉을 하느라 밤을 샌 여파가 아직까지다.
아침에 하얗게 밝아오는 바깥을 보며 오랜만에 머리 속이 쌔했다.
출판사에서 작가 피드백 혹은 교정을 보느라 밤을 샌 적이 꽤 있었다.
이삭줍기처럼 원고를 읽을 때마다 작가에게 해 줄 말이 있고, 교정을 봐야 할 문장이 있었다.
혹 빠진 것이 있을까봐 보고 또 보다 보면 어느새 아침이 되곤 하였다
그 하얀 아침엔 여지없이 기분좋게 머리가 쌔해지곤 했었다.
간혹은 깊은 밤 작업이라 작가 피드백에 감정에 치우지거나, 집중력 부족으로 교정이 엉망이 되어 밤샘을 하지 않는 것이 나을 뻔 한 적도 있었다.
그제 밤샘으로 '옷' 한 벌이 완성되었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꿈에 그리던 '내 마음에 드는 풍기인견' 로브다.
묵직하게 차가운 풍기인견을 너무나 좋아해서 한 겨울이 아니면 잠옷이며 이불이며 패드 모두 인견을 쓴다.
심지어 작년 겨울에는 온수매트위에 인견패드를 깔았다.
풍기인견은 섬유먼지가 거의 없어서 피부가 예민한 내게는 더할 나위없이 좋은 섬유이다.
나무에서 채취한 천연펄프섬유! 정말 좋다.
환하게 밝은 아침에 갓 완성된 로브를 걸친다.
풍기인견 로브가 지친 몸에 차갑고 매끄럽게 흐른다.
꿈이었다.
풍기인견으로 예쁜 옷을 만드는 것.
출판사를 그만두자 바로 겁도 없이 재봉공방을 찾아가
공방 선생님께 '풍기인견'으로 예쁜 옷을 만들고 싶다고 하였다.
재봉을 배운 적도 없으면서 창업반에 등록을 하고 미싱과 오버록미싱을 덜컥 장만했다.
지난 가을 겨울 내내 옷 만드는 것을 배웠다.
언제부터인지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엄마는 여름이 되면, 마치 겨울 김장 준비를 하듯
시장에서 풍기인견 원단을 떠다가 바느질집에 맡겨 식구들의 여름 잠옷을 준비해주셨다.
모두 같은 디자인에 무늬가 달랐던 여름 인견 잠옷은 여름방학이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입었었다.
풍기는 고향인 안동과 멀지 않는 곳이다.
어른이 되고, 나이를 먹고, 그리고 언젠가부터 아토피가 점점 심해져 밤마다 온 몸을 긁곤 했다.
도저히 어쩌지 못하는 날에는 차가운 얼음을 갖다대면 좀 나은 듯 했다.
차가운 풍기인견이 생각났다.
참, 나.
풍기인견의 무늬, 디자인은 할머니들만들의 리그인 듯, 도저히 어째해볼 수 없는 장르의 옷이었다.
몸빼라고 하는 일바지, 통자 원피스... 무늬는 뭐...
급한 나머지 디자인이고 뭐고 따지지 않고 인견이불과 옷을 사입고는 믿을 수 없겠지만
괜찮아졌다.
근데 '안 이쁘다.'
이렇게 좋은데 이쁜 거 입고 싶다.
그때부터 인견으로 옷을 만드는 꿈을 꿨고,
명절에 안동을 갈 때면 풍기에 들러 혹 예쁜 인견이 있는지 살피곤했다.
그리고 꿈을 이루는 주문처럼 가족들에게 말했다.
'풍기인견으로 옷을 만들거야. 언젠가는!'
언젠가의 꿈.
너무 막연하고 대책이 없어 그야말로 '꿈'이었던 '언젠가의 꿈'을 살고 있다.
인견으로 옷을 만들고 있다.
꿈은 한정없이 어렵다.
어려운지도 모르고 꿈꿨다.
옷 만드는데 필요한 과정을 배우고나서,
다루기 어렵다는 풍기인견에 도전 중이다.
미끄러워서 손에서 빠지고, 재봉틀에서 흘러내리고, 쉽게 빠지는 솔기도 제법 손에 익어간다.
잘해서 많이 팔거다.
좋은거니까 많이 많이 팔아서 나처럼 진짜 좋네 하는 소리를 여기저기서 듣고 싶다.
이것이 또 언젠가의 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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