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금 일 하나를 끝냈다.
책을 추천하는 일인데, 이게 생각보다 장난 아니게 어렵다.
내가 고르는 책이 그들에게 필요한 것이야 하며, 그들을 위한 것이여야 하며,
동시에 나를 드러내는 것이 되는 책 추천.
그냥 리스트에서 긁을 일이 절대 아니었다. 며칠을 기웃기웃 거리다 이 새벽에야 메일을 보내고는 휴~ 한 판을 했다.
어제는 좀 늦은 밤부터 만화 [미생]을 처음부터 다시 읽었다.
미생을 처음 읽었던 것은 회사생활 중이었고, 괜히 급한 마음에 후룩하고 읽었던 지라 사실, 별 감흥이 그리 없었더랬다.
그런데 어제는 확실히 달랐다.
좀 떨어져 있어서 그런지 회사라는 곳과 직장이라는 것과 직장인으로의 삶이라는 것이 강하게 다가왔다.
지난 주 드라마 [미생]을 재미있게 보면서 좀 더 재미있게 보기 위해 한 번 읽어보기로 한 것인데 몇 군데에서는 울컥했다.
원작이 있는 드라마, 영화 보기!
내일 [미생]을 하는 날이니, 꼴딱 밤을 샐 만하지. 9권을 덮으니 아침 일곱시더라는...., 난 그런게 참 좋다!
3년전쯤에 보다가 끊긴 일본드라마 [료마가 간다]도 다시 이어봐야 하는데, 그리고 [료마가 간다] 만화도 봐야하는데,
왜 료마는 내게 잊혀지지 않고 숙제처럼 남는 거지?
세상이 바뀌기 전에 '료마' 도전! 폐인이 되어야겠군!
폐인이라니 생각나는군.. 며칠 째 만들기 중이다.
독립운동가의 아내로 태어났으면 딱 좋았을 것처럼 워낙 바느질을 좋아한다.
며칠째 오후마다 작품을 하나씩 만드는 중이다.
커피필터를 만들려고, 엄마에게 삼베조각을 부탁했는데, 집에 돌아다니는 천도 함께 보낸거다.그것이 시작이었다.
첫날은 가장 큰 천으로 재봉질을 해서 등받이쿠션커버를 만들었고, 남은 천으로 스툴 방석을 만들었다.
두번째 날은 라텍스이불을 좀 작게 잘라 재봉실을 해서 마감하면서, 커피메이커 커버? 와 폭신폭신한 마우스패드, 주방장갑을 만들었고, (이 중 주방장갑은 실패, 작다)
오늘은 바로 이 냄비받침이다. 냄비받침을 하기엔 너무 아름다운가?
라면을 먹다가 냄비받침이 낭만적이지 않다는 생각에 냄비받침을 만들었다.
놀라운 것은 수를 놓고 싶다는 생각까지 한 거다.
어떻게 할까? 자수를 원하는데..., 예스 24에 들어가 프랑스 자수 책 미리보기를 보면서 대충 도안을 그리고, 재봉실로 그냥 했다.
인테리어용으로 쓸 데가 있을 것 같아 가지고 있었던 수틀 비슷한 것에다 천을 끼우고,
한 땀 한 땀 꽃잎을 수 놓고, 초록잎을 수 놓고, 그걸 만진다는 것.
좋다. 좋다. 이런 건 중학교 1학년때 하고 처음인 것 같다. 재능이 있는 것 같다.
이걸 만든 데는 결정적인 것이 있었는데, 바로 크로버 자동실꿰기이다.
따로 배운 적은 없다. 그저 멋대로 하는 바느질을 좋아하는데,
옷을 꿰매는 것도, 옷을 멋대로 고치는 것도, 퀼트도, 암튼 뭐든... 최근 그걸 맘대로 못했다.
왜냐면 실을 바늘에 꿰는 것이 힘들어서... 어찌어찌 꿰기는 꿰겠는데, 그게 잘 안되니까... 짜증이 팍팍 나니까...
노안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뭔가 있을 것 같았다. 검색을 한 끝에 바늘을 꽂고 실을 걸치고, 버튼만 누르면 실이 꿰어지는 거다. 대박이지? 정말!
우여곡절이 있었다. 샀는데, 안 되었다. 다른 사람들은 좋다고 리뷰를 올렸건만 나는 아무리해도 안되었다.
바늘의 문제인 거 같아.
대체 이 기계에 맞는 바늘은 뭐지? 하고 며칠을 고민했는지 모른다.
그러다 돈오! 문득 떠올랐다.
이 기계를 만든 회사에서 나온 바늘이면 되지 않을까!
남들은 뭐라 말할지 모르지만 나에겐 유레카!였다.
같은 회사 것을 쓰면 되는 거다. 그 단순한 진리....를 깨닫고 나서 행복해졌다.
자동실꿰기는 한 번의 실수도 없이 내게 실을 꿴 바늘을 주었다.
멋지다! 색색실을 바꾸는 것이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그걸 하고 싶어서 자수를 놓은 것이지.
나는 더 늙으면 실을 못 꿰어서 참 슬플 것 같았는데, 이젠 괜찮다.
누가 나를 열받게 하면 무조건 바느질로 평정심 찾기!
심지어, 미싱바늘을 꿰는 도구도 있다는 것, 주문해 뒀다. 역시 삶은 주어진 삶을 극복하는 과정이다.
사람에 대한 생각 말고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날들이 계속 되고 있다.
[미생]에서 공감했던 것 중 하나, 견딜 수 있는 몸 상태를 유지하라.
어쩌면 몸이 너무 약해져서 내가 나를 견디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그런 것 같다.
나를 견디지 못하니까, 나를 몬 본 척 하려 하는 것이다.
나는 나를 좀 아는데, 내가 바느질을 하면 머릿속이 지옥이라는 뜻이다. 대개 그렇다.
언제쯤 나의 바느질을 멈출 수 있을까? 그대 생각 밖에는 아무 것 없는 날
지금부터 윤종신의 노래를 들으며 신형철평론가의 영화평론집 [정확한 사랑의 실험]을 읽어야겠다.
그리고, 바느질을 하면서 그 중 못 본 영화들을 챙겨봐야겠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날들 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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