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서로에게 상처를 주었는지 모르지
아침에 일어나면 목을 누르는 슬픔
그저 지나갔으면 했지만
매일의 손님이야, 이 슬픔은
왜 그런지 나도 몰라
아마도 내 아침의 버릇이겠지
네가 쓰러졌는데도 난 몰랐고
내가 우는데도 넌 몰랐지
꼭 우린 모르는 사람들 같았지만
우리가 사랑하는 건
단 하나, 빛나는 우리 인생의 별
살아가는 거야. 서로 사랑하는 우리,
상처에 짓이겨진 박하 향기가 날 때까지
박하 향기가 네 상처와 슬픔을 지그시 누르고
너의 가슴을 스칠 때
얼마나 환하겠어, 우리의 아침은
어디에선가 박하 향기가 나면
내가 다녀갔거니 해 줘
-허수경, [박하] 중에서
새해가 되었고, 며칠이 지났다.
그는 지는 해를 보러 영종도를 가자 했다.
그가 말한지 30분만에 우리는 영종도 작은 해변에 앉아 석양을 보았다.
갈매기가 이리저리 날고 있었다.
나는 그가 작은 바위 위에 깔아놓은 자리에 앉아
떨어지는 해 앞으로 날아다니는 갈매기들을 우상처럼 보았다.
나는 앉아있고,
그는 내 옆에 길다랗게 그림자를 드리우고 서 있다.
따뜻한 차를 나눠 마셨다.
박하 향기가 네 상처와 슬픔을 지그시 누르고
너의 가슴을 스칠 때
얼마나 환하겠어, 우리의 아침은
시인의 말처럼 ('박하'는 시인 허수경이 쓴 소설이다)
우리가 오랜 시간동안 헤어졌다 만났다를 반복하는 동안,
길다란 그의 그림자가 내 옆에서 나무처럼 흔들린다.
나는 그의 곁에서 들국화의 이별노래 [겨울비]를 흥얼거리며, 쓸쓸해 했다.
겨울비 내리던 밤
그대 떠나갔네
바람 끝 닿지않는
밤과 낮 저 편에
내가 불빛 속을 서둘러
밤 길 달렸을 때
내 가슴 두드리던 아득한 그 종소리
겨울비 내리던 밤
그대 떠나갔네
방안가득 하얗게
촛불 밝혀두고
내가 하늘보며 천천히
밤 길 걸었을 때
내 마른 이마 위엔 차가운 빗방울이
-들국화 4집, 겨울비
잠시 쓸쓸해진 나를 반성할 뻔 했다.
그의 곁에서 쓸쓸해지면 안된다고 생각했었던 같다.
급히 반성을 접고, 그대로 쓸쓸해지기로 한다.
길게 서 있는 그에게 기대었다.
내 머리에 코를 박은 그가 말한다.
"당신 냄새 좋아."
마음 한쪽이 짓이겨지고 있었나보다.
그래서 시인이 말한 박하향이 나고 있었을지도,
고맙다.
고름 냄새라고 말할 수도 있었을 상처의 냄새를
박하향기라고 말해 준 시인이 고맙고,
고름 냄새를 박하향기처럼 좋은 냄새로 맡아 준 그도 고맙다.
새해에 지는 해를 볼 수도 있고,
그의 곁에서 쓸쓸해질 수도 있고,
상처를 자연스레 드러내놓으면 박하향을 낼수도 있고.
갈매기처럼.
새해가 반갑다.
'읽는대로 小說'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알랭 드 보통] 우리는 사랑일까 (0) | 2019.01.23 |
---|---|
[마쓰이에 마사시] 우아한지 어떤지 모르는 (0) | 2018.04.24 |
[김선영] 내일은 내일에게 (0) | 2017.12.14 |
[한차현] 우리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요란하다 (0) | 2017.12.08 |
[조르주 페렉] 잠자는 남자 (0) | 2017.08.29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