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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대로 小說

[조르주 페렉] 잠자는 남자

by 발비(發飛) 2017. 8. 29.


어제.

퇴근하자 집으로 돌아와 저녁을 먹었다. 

저녁을 먹자, 배가 몹시 아팠다. 

아마 갑자기 서늘해진 날씨 탓인 듯 했다. 

나는 전기장판을 배에 깔고 누었다. 예민해진 위인지, 장인지가 서서히 가라앉았다. 

그러다 기절한 것처럼 잠이 들었다. 

자다 깨어 시계를 보니 겨우 자정이었다. 한 시간 반을 잔 셈이다. 


그 시간에 영 잠에서 깨어버렸다. 

어제 산 책을 좀 읽다가, 간만에 포스팅을 하고, 다른 책을 골랐다. 


조르주 페렉의 [잠자는 남자]

이 책을 처음 만난 것은 약 3년 전 ,전에 다니던 회사를 전혀 생각지도 못한 상황을 만나, 그만두게 되었을 때다. 


회사라는 것이, 남의 밑에서 일한다는 것이라는 것을 절감했던 시간이었다. 

내가 만든 상황이 아니라 타인의 상황에 따라 나의 전부가 압도될 수도 있다는 것.

티비와 같은 매체로부터 본 바가 있지만, 온 몸으로 겪었을 때의 느낌은 '고독' 이었다. 


완벽한 불면의 시간들. 나는 잠을 잘 수만 있다면, 영혼을 팔 지경이었다. 

잠을 자지 못한다는 것은 깨어있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깨어있지 못하자 나를 둘러싼 모든 정신적 물리적 환경들이 제 멋대로 왜곡되었다. 


잠에 관한 책들을 검색했다. 

그때 찾은 책이다. 


너는 먹지도 않고, 읽지도 않고, 거의 꼼짝하지 않고, 네 방에 머문다. 너는 대야를, 선반을, 네 무릎을, 금이 간 거울에 비친 네 시선을, 사발 하나를, 전기 스위치를 바라본다. 너는 거리의 소음에, 층계참 수도꼭지의 물방울 소리에, 네 옆방 남자의 소음에, 그의 목 끓는 소리에, 그가 서랍을 여닫는 소리에, 간헐적인 그의 기침 소리에, 그 집의 주전자가 쉭쉭 끓어대는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너는, 천장 위에서, 가는 균열의 구불구불한 선을, 한 마리 파리가 그려 보이는 하릴없는 노선을, 가까스로 가늠할 수 있는 그림자들이 번져나가는 모습을 쫓고 있다. 


-조르주 페렉 [잠자는 남자 중에서]



잠자는 남자


반가웠다. 고슴도치의 가시처럼 돋아있는 불면에 손길이 닿는 느낌. 

주인공은 자신의 좁은 방을 마치 우주나 되는 듯 깊고 디테일하게 본다. 나도 따라 내 방을 보았다. 

주인공이 동네를 걸으면, 나도 동네를 걸었다. 

사람들은 뛰고, 걷고, 자전거를 타고, 땀을 흘렸다. 

나는 주인공처럼 타인의 시선으로 타인을 보았고, 나도 그처럼 마치 무중력인 듯 걸었다.  

어떤 소리도 나와 무관했다. 


너는 혼자다. 너는 홀로인 사람처럼 걷는 법을, 한가로이 산책하는 법을, 주시하지 않고 바라보는 법을, 바라보지 않고 주시하는 법을 배운다. 너는 투명성을, 부동성을, 존재하지 않기를 배운다. 너는 하나의 그림자가 되는 법과 마치 돌멩이라도 된다는 듯 사람들을 쳐다보는 법을 배운다.


가끔 나는 손가락을 뻗어 텍스트에 숨은 주인공을 만져 보기도 했다. 

활판이 아닌 것이 너무 서러웠다. 

활판이었다면, 손가락 끝에서 어떤 실존을 간절히 원했다.  

나의 손은 마치 늙은 여자의 자위처럼 허공을 떠돌았다. 


도로 내려와야만 할진대, 네가 왜 가장 높은 저 언덕의 정상에 기어오르려 할 것이며, 일단 내려온 후, 어떻게 거기를 오르기 시작했는지를 주절거리며 네 인생을 보내지 않으려면 너는 과연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왜 너는 사는 척을 하는 것인가? 왜 너는 무언가를 계속하려는 것인가? 네게 일어날 모든 일을 너는 이미 알고 있지 않은가? 


기억이 났다. 

그가 며칠을 그렇게 보내다가 한 걸음 한 걸음 문을 열었던 시간이.

누구나 필요한 시간, 누구에게나 걸리는 시간이 내게도 걸렸고, 

그것은 실존하는 내 환경이 아니라, 불과 며칠 전까지 듣도 보도 못한 작가의 책이며, 주인공과 함께였다. 


몸은 무거웠고, 

마음은 움직이지 않았다. 


너는 희망하는 법을, 착수하는 법을, 성공하는 법을, 간직하는 법을 잊어버려야 한다. 

작가의 역설과 주인공의 역설은 이 책의 곳곳에 있었다. 
그 역설들은 하늘과 땅을 오르락 내리각했고, 지옥과 천당을 오갔다. 
어쩌면 그 역설들을 오가는 동안 움직일 기운이 생겼는지도 모르겠다. 
그즈음 나는 산티아고로 떠나기로 결정했다. 
연습으로 걸어본 불과 1킬로도 안되는 이마트까지 걸을 기운도 남지 않았던 그때의 나는 산티아고로 갈 생각을 했다. 
작가가 말한, 희망 착수 성공 같은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목적 없는 긴 여행의 시작이었다. 


어젯밤 머리가 쎄해지는 불면이 떠올린 기억이다. 



조르주 페렉은 소설가이자 영화감독으로 [잠자는 남자]를 영화로도 만들었다. 

[조르주 페렉] Un Homme Qui Dort (1974) Full movie with subs




"Taxi Driver" meets "Un homme qui do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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