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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절거림

가수면(假睡眠)이 준 사인(sign)

by 발비(發飛) 2018. 9. 11.


발바닥에서 먼지가 인다. 

한 걸음 디딜 때마다 먼지가 풀풀 날린다. 

먼지냄새가 난다. 


가수면상태였다.


월요일 아침의 노곤함을 이겨보고자 2주동안 끊었던 커피를 마셨다. 

아마 그 여파일 것이다. 

이번 달부터 다니기 시작한 구민스포츠센터의 요가필라테스(요가인줄 알았더니 필라테스였다) 에서 

엄청난 운동을 했음에도 자정을 넘기고도 잠이 들지 않았다. 


커피 마신 것을 후회하는 와중에 서서히 영육이 분리되기 시작했다. 

머리는 말짱한데, 몸은 잠들려한다.  

그 경계 어디에선가 냄새가 폴폴 났다. 


먼지냄새. 


누워있는데도 마치 서 있는 듯하다.

흙을 디디고 선 발바닥에서 하얗게 먼지가 올라온다. 

흙은 서서히 부서지고, 갈아지고, 날린다.

미세한 것들. 

내 발바닥은 가만히 서 있는데, 발바닥 아래에서는 그러고 있다. 


필라테스 강사의 구령처럼  

플랫, 플랫, 

흙을 디디고 선 발가락에 힘을 주어 들어올린다. 

발이 흙에서 떨어지도록, 

발바닥에서 먼지가 나지 않도록,

소용이 없다. 

땅에 발을 디디지 않을 방법이 없다. 


꿈과 현실의 경계에서 나는 생각한다. 


흙이지만, 흙뿐만 아닐 것이다. 

내가 만났던 사람들과 했던 일들과 살고 있던 집들과 걸어다녔던 길들과 또...

이 모든 것들을 지나 다닐 때마다, 

그것들은 먼지를 날리며 사라졌던 것은 아닐까.


지금 이 먼지 냄새는  

내가 만나고 있는 사람과 하고 있는 일과 살고 있는 집과 걸어다니고 있는 길들이 

내 발바닥 아래서 부서지고, 갈아지고, 날리는 냄새가 아닐까.


디디지 말아야 할 것들이.

그럼에도 디뎌야 할 것들이. 

꿈과 현실의 경계, 비몽사몽 가수면상태에서 

발바닥 밑이 아니라 허공에 둥둥 떠다녀 눈앞이 어지럽다. 


기도를 해야지. (성당에 가야겠다는 생각도 한듯 하다.)


출근길, 어제의 가수면을 생각하며, 

점심시간에 산책 삼아 가끔 가는 절두산 성지 성당에 가서, 

내가 만났던 사람들과 했던 일들과 살고 있던 집들과 걸어다녔던 길들과 또...

내가 디딘 곳, 먼지를 일으킨 곳, 부수고 갈아버린 내 시간들을 참회하는 기도를 해야겠다. 


실체를 알 수 없는 그 무엇들에 대해 기도를 해야겠다. 

그래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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