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와 오늘 같은 원피스를 입고 출근을 했다.
아마 7,8년 전 쯤 사서 2년을 열심히 입다가 그 다음에는 한번도 입지 않았다.
꽃무늬가 있는 랩 원피스이다. 한 마디로 여자 여자한 원피스이다.
참 더운 날들이다.
여자라서 좋은 점 중에 하나는 엄청 더워지면 원피스를 입을 수 있다는 것이다.
어제 오늘 입은 꽃무늬 원피스는 내가 가지고 있는 원피스 중에서 아마 가장 시원한 원피스일 것이다.
이사를 하고, 옷장을 정리하면서 꽤 많은 원피스를 정리했는데,
이건 나중에 혹시 '빨간 머리 앤'이나 '하이디' 처럼 살면서 초록이 보이는 주방 창 앞에서 저녁 식사를 준비할 때 입으려고,
어쩌면 이루어지지 않을 그 꿈을 잊지 않으려고 남겨둔 원피스이다.
어제 아침에 그 원피스를 입는 데는 약간의 용기가 필요했다.
원피스를 샀을 때는 원피스, 그것도 꽃무늬 원피스를 많이 입었었다.
최근 몇 년은 단색, 무채색, 기본 디자인, 헐렁한 옷들을, 같은 디자인으로 여러 개 사서
좋게 말해 시크하게 입고 다녔다.
옷이 단호했다.
중국에서 출장을 온 어느 대표가 쇼핑을 하러 갈 거라며, 내게 말했다.
"옷 스타일이 좋아요."
"아, 유니클로 퍼맨 스몰사이즈."
나는 최근 심플한 옷을 입기 위해 남자 매장에서 옷을 골랐다.
출근길, 꽃무늬 랩 원피스의 앞 자락이 살랑거렸다.
종일 많은 인사를 들었다.
누군지 몰랐어요.
무슨 일 있으세요?
연애 각인데요.
이상해요.
이렇게 입고 다니세요.
나는 오래 전에 입던 원피스라는 말만 강조했다.
오래 전 나는 무슨 일이 있었던가, 연애를 했나, 이상했나, 어울렸나....
오늘 아침에 뭘 입을까 하고,
행거를 바라다보다, 어제와 같은 원피스를 집었다.
가장 시원한 옷이라서가 아니었다.
오래 전 입었던 옷이, 지금은 어색해진 옷이, 꽃들이 살랑거리는 옷이,
나에게도, 내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낯설지 않은 일상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대개 어색한 것들은 한 번만 더 하면 어색해지지 않는다.
그랬다.
어제 커피를 내 주면서 어색한 듯 내 원피스를 보던, 단골 커피집 바리스타도 오늘은 그제와 같은 눈빛으로 내게 커피를 건넸다.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인사를 하는 나도, 인사에 답하는 직원들도 덧말을 붙이지 않았다.
늘 살아가던 삶이 있었다.
같은 무늬를 반복하는 패턴처럼, 살던 삶이 있다.
어제와 오늘 꽃무늬 랩 원피스를 입었던 것처럼,
단순하게 흐르던 삶의 패턴에 하나의 패턴이 덧대어졌을 때,
그 혼란스러움을,
그 복잡함을,
다시 정리해야 하는 수고를,
몇 년이 걸릴 지도 모를 그 일을,
언젠가는 또 바뀔,
그것을 굳이 해야 할까?
지독한 더위가 필요하다.
8년 전 꽃무늬 랩 원피스를 꺼내 입었듯,
하루 이틀 반복하며 익숙해지려고 하듯,
지독한 사랑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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