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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절거림

꽃무늬 원피스

by 발비(發飛) 2018. 7. 20.





어제와 오늘 같은 원피스를 입고 출근을 했다. 

아마 7,8년 전 쯤 사서 2년을 열심히 입다가 그 다음에는 한번도 입지 않았다. 

꽃무늬가 있는 랩 원피스이다. 한 마디로 여자 여자한 원피스이다. 


참 더운 날들이다. 

여자라서 좋은 점 중에 하나는 엄청 더워지면 원피스를 입을 수 있다는 것이다. 

어제 오늘 입은 꽃무늬 원피스는 내가 가지고 있는 원피스 중에서 아마 가장 시원한 원피스일 것이다. 


이사를 하고, 옷장을 정리하면서 꽤 많은 원피스를 정리했는데, 

이건 나중에 혹시 '빨간 머리 앤'이나 '하이디' 처럼 살면서 초록이 보이는 주방 창 앞에서 저녁 식사를 준비할 때 입으려고,

어쩌면 이루어지지 않을 그 꿈을 잊지 않으려고 남겨둔 원피스이다. 


어제 아침에 그 원피스를 입는 데는 약간의 용기가 필요했다. 

원피스를 샀을 때는 원피스, 그것도 꽃무늬 원피스를 많이 입었었다. 


최근 몇 년은 단색, 무채색, 기본 디자인, 헐렁한 옷들을, 같은 디자인으로 여러 개 사서

좋게 말해 시크하게 입고 다녔다. 

옷이 단호했다. 


중국에서 출장을 온 어느 대표가 쇼핑을 하러 갈 거라며, 내게 말했다. 

"옷 스타일이 좋아요." 

"아, 유니클로 퍼맨 스몰사이즈."

나는 최근 심플한 옷을 입기 위해 남자 매장에서 옷을 골랐다.  


출근길, 꽃무늬 랩 원피스의 앞 자락이 살랑거렸다. 


종일 많은 인사를 들었다. 


누군지 몰랐어요.

무슨 일 있으세요?

연애 각인데요.

이상해요.

이렇게 입고 다니세요.


나는 오래 전에 입던 원피스라는 말만 강조했다. 


오래 전 나는 무슨 일이 있었던가, 연애를 했나, 이상했나, 어울렸나....


오늘 아침에 뭘 입을까 하고, 

행거를 바라다보다, 어제와 같은 원피스를 집었다. 


가장 시원한 옷이라서가 아니었다. 

오래 전 입었던 옷이, 지금은 어색해진 옷이, 꽃들이 살랑거리는 옷이,

나에게도, 내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낯설지 않은 일상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대개 어색한 것들은 한 번만 더 하면 어색해지지 않는다. 


그랬다. 

어제 커피를 내 주면서 어색한 듯 내 원피스를 보던, 단골 커피집 바리스타도 오늘은 그제와 같은 눈빛으로 내게 커피를 건넸다.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인사를 하는 나도, 인사에 답하는 직원들도 덧말을 붙이지 않았다. 


늘 살아가던 삶이 있었다. 

같은 무늬를 반복하는 패턴처럼, 살던 삶이 있다.


어제와 오늘 꽃무늬 랩 원피스를 입었던 것처럼, 

단순하게 흐르던 삶의 패턴에 하나의 패턴이 덧대어졌을 때, 

그 혼란스러움을,

그 복잡함을, 

다시 정리해야 하는 수고를, 

몇 년이 걸릴 지도 모를 그 일을,

언젠가는 또 바뀔,

그것을 굳이 해야 할까?


지독한 더위가 필요하다. 

8년 전 꽃무늬 랩 원피스를 꺼내 입었듯, 

하루 이틀 반복하며 익숙해지려고 하듯,


지독한 사랑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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