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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절거림

태풍 솔릭을 대하는 자세

by 발비(發飛) 2018. 8. 23.


더 완벽하고 아름다운 삶을 살고 싶다는 욕망, 그리고 그 욕망을 달성하는 걸 도와줄 어떤 방식, 장소, 혹은 식습관이 존재하리라는 믿음. 나는 그런 마음을 이해한다. 하지만 이 소설은 사람들이 그 마음을 지나치게 따를 때 어떤 일이 발생하는 지에 대한 이야기다. 이 책의 주인공이 말하듯 정리정돈이야 얼마든지 할 수 있지만 당신 머릿속의 난장판으로부터는 도망칠 수 없으니까 . - [더 걸 비포] , JP 델레이니 


태풍 솔릭이 온다하고, 온다한지 일주일 정도 되었다. 

뉴스에서는 연일 솔릭이 가장 먼저 닥칠 제주도의 상황을 보도하고 있다.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는데 우산도 없이 기사를 읽는 기자들을 연결하고 있다. 

세계 기상 전문가들이 너무 느려서 놀라고 있다고 한다.


느리고 거대한 태풍. 솔릭


어제는 좀 늦은 퇴근을 하고, 

뉴스를 보면서 핀터레스트에서 찾은 새로운 바느질법으로 옷 소매를 고쳤다. 

고요하게 바느질을 하다보니, 남방 두 개가 블라우스가 되었다. 


2012년에 태풍 산바가 온다고 매일 뉴스에 나왔다. 

뉴스를 들을 때마다 가슴이 쿵쾅거렸다. 

누가 들으면 욕하겠지만, 무서워서가 아니라 설레여서 들썩거렸다. 

결국 참지 못하고,회사에 휴가를 냈다. 


남들은 제주행 비행기표를 취소하는 와중에

남들은 제주도 숙소를 취소하는 와중에

나는 비행기표를 끊고, 숙소를 예매했다. 


나는 바람을 만나고 싶었다. 

강한 바람, 

나무도 꺾고, 바위를 날리고, 산같은 파도를 만들어내는 강한 바람을 만나고 싶었다. 

그 바람 앞에 서 있고 싶었다. 

그 바람에 날리고 싶었다. 

어쩌면 그 바람이 데려다 주는 곳으로 가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http://blog.daum.net/binaida01/15950853

http://blog.daum.net/binaida01/15950849


이름을 달리한 태풍이 온다고 했고, 내일 아침이면 서울에 온다고 한다. 


the girl before는 죽었다


지금 내 몸은 태풍 자기장이 흐르는지 강한 힘이 끌림을 느낀다. 

하지만, 나는 그 바람 앞에 가려고 비행기표를 끊지 않았고, 

여전히 심장은 쿵쾅거리지만 그 심장을 잘 누르고 있으며,

심지어 태풍이 올때 내가 얼마나 차분해질 수 있는지에 대해 기대한다. 

태풍이 주는 강한 고립 앞에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는지도 기대한다. 


아주 고요하게 바느질 중이었는데, 

한 통의 부재중 전화가 떠 있었고, 곧 전화가 울렸다. 

일로 미팅을 몇 번 했던 분이 그 밤에, 

나는 전화를 받자마자 웃었다. 

그도 웃었다. 

퇴근했냐는 물음에 퇴근했다고 말하면서 또 웃었다. 

됐네요, 하길래, 됐지요 하면서 웃다가 끊었다. 

아침에 일어나보니,어젯밤 늦은 시간에 부재중으로 또 한 통 있었다. 


부재중 전화를 보면서도, 

내일은 태풍 솔릭이 오지, 했다.  


내일 아침 일곱시에 온다한다. 

아침 일곱시면 알람이 울리는 시간이다. 


그 시간에 아무리 강한 태풍이 오더라도, 

'끙'하고 몸을 일으켜 '다운독' 자세로 잠시 몸을 풀어주고,

김어준의 뉴스공장을 틀어놓고 화장실에 앉았다가

일곱시 반이면 샤워를 시작하고, 

여덟시면 약간의 화장을 시작해서 옷을 입고,

여덟시 이십분이면 현관문을 나서 출근을 할 것이다. 


복도식 아파트의 현관문이 잘 열릴까?

만약 태풍이 강하다면, 현관문은 바람의 힘 때문에 열리지 않을 것이고, 

(안 열렸으면 좋겠다. 힘겨루기를 했으면 좋겠다)

그나마라면, 바람이 불더라도 문은 열 수 있을 것이다. 

(열리더라도 깜짝 놀라 집으로 다시 들어갈 정도의 바람이 불었으면 좋겠다)

시원하겠다. 

(비가 오더라도 우산을 쓰지 않고, 우산이 날려 도저히 쓸 수 없었으면 좋겠다)

불편하겠다. 

(젖은 몸으로 전철을 타면, 타인은 내가, 나는 타인이 불편하겠지. 우산이 켜지지 않겠지, 재미있다)

누군가는 힘들겠다. 

(..넘는 자와 머무르는 자. 해결하는 자와 핑계대는 자.....마음을 숨기는 일, 다치는 사람이 있는 일, 손실이 있는 일은 늘 너무 많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힘든 일이라는 것 때문에 마음이 편치 않겠다. 


그래서

나는 강한 태풍이 좋아, 하는 마음을 숨기겠지. 

마치 태풍과 무관한 것처럼, 뉴스처럼, 나는 태풍을 대하겠지.


솔릭은 한반도가 너무 더워, 바람의 도움없이 스스로의 힘으로 아주 천천히 움직이고 있단다.

강한 것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을 좋아한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알고 있다. 결국 혼자가기는 어렵다는 것을 소멸은 시간의 문제이다. 


태풍 솔릭을 대하는 일상적인 자세.


환자가 이미 잊었고 억압당한 것이 무엇이건, 그것을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그것을 실연한다고 말하 수 있다. 환자는 그것을 기억으로써가 아니라 행위로써 재연하다. 그래서 그것을 반복하지만 당연히 반복한다는 인식은 없다 - 지크문트 프로스트 [기억하기와 반복하기, 해결하기]


그래서 


목계木鷄 

묵묵부답默默不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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