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하는 말은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위에서 하는 말은 더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침묵했다.
말들은 가슴 속에서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뒤엉킨다.
가슴이 아팠다.
정리되지 않은 말들을 순서없이 내보내고 싶었다.
문득 탈무드에서 읽은 말을 되뇌이며 가슴의 통증을 더 견디기로 한다.
"특정한 상황에서 무슨 말을 할지, 무슨 말을 하지 않아야 할지 아는 것은 지혜의 징표이다. 말은 은화 한 닢의 값어치가 나가지만 침묵은 곱절의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은 훨씬 더 큰 이해의 징표이다."- <원전으로 읽는 탈무드> 중에서
그것이 그 지점에 왜 생각이 났을까?
내 침묵은 도움이 되지 않았다.
길을 걷다가 그가 멈춘다.
나의 침묵 만큼의 말들이 그의 입에서 나왔다.
지혜,
나는 지혜로운가?
그는 지혜로운가?
내가 삼킨 말들은 그가 뱉어 내 안으로 들어온 말과 다시 한 번 더 뒤엉킨다.
어떤 말은 살아남았고,
어떤 말은 제 풀에 죽었다.
길,
만약 길이 아니었다면,
늘 함께 하던 둘만의 공간이었다면 내 말들은 세상으로 정연하게 나올 수 있었을까?
그래서 무슨 말이든 하라는,
침묵을 경멸로 받아들인,
그를 이해시키고 위로할 수 있었을까?
길의 끝인 집이다.
여전히 말들은 가슴 한가운데서 또아리를 틀고 움직이지 않는다.
움직일 생각도 하지 않는다.
이대로 화석이라도 될 태세로 버티고 있다.
이쯤이면 말이 아니라 다른 무엇이다. 무엇일까.
나의 침묵에 말을 쏟아내던 그도 제 풀에 지쳐 말을 멈췄다.
시간은 규칙적으로 흐른다.
몸이 아픈 것을 인식하는 것은
인간이 스스로를 알아가는 과정에서 최초로 지불해야 하는,
어쩌면 지금까지 계속해서 지불하고 있는 대가일 것이다. -존 버거
굳어버린 말 때문인지, 몸, 어딘가 아팠다.
강제된 침묵과 어둠이 차라리 낫겠다는 생각을 했다.
한강의 소설 <희랍어 시간>에 나오는 비현실적 남녀와 공간이고 싶었다.
그가 다시 말을 꺼냈다.
이젠 무슨 말이든 해야 하지 않겠냐고 했다.
나는 말 대신, 'ㅇㅇ' 으로 답했다.
길은 끝나고,
길이 아니었다면 하고 가정했던 시간도 끝났다.
길 때문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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