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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절거림

On the road-말

by 발비(發飛) 2018. 7. 19.





길 위에서 하는 말은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위에서 하는 말은 더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침묵했다. 


말들은 가슴 속에서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뒤엉킨다. 

가슴이 아팠다. 

정리되지 않은 말들을 순서없이 내보내고 싶었다. 


문득 탈무드에서 읽은 말을 되뇌이며 가슴의 통증을 더 견디기로 한다. 


"특정한 상황에서 무슨 말을 할지, 무슨 말을 하지 않아야 할지 아는 것은 지혜의 징표이다. 말은 은화 한 닢의 값어치가 나가지만 침묵은 곱절의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은 훨씬 더 큰 이해의 징표이다."- <원전으로 읽는 탈무드> 중에서 


그것이 그 지점에 왜 생각이 났을까?

내 침묵은 도움이 되지 않았다. 


길을 걷다가 그가 멈춘다. 

나의 침묵 만큼의 말들이 그의 입에서 나왔다. 

지혜, 

나는 지혜로운가?

그는 지혜로운가?


내가 삼킨 말들은 그가 뱉어 내 안으로 들어온 말과 다시 한 번 더 뒤엉킨다.

어떤 말은 살아남았고, 

어떤 말은 제 풀에 죽었다. 


길, 


만약 길이 아니었다면, 

늘 함께 하던 둘만의 공간이었다면 내 말들은 세상으로 정연하게 나올 수 있었을까?

그래서 무슨 말이든 하라는, 

침묵을 경멸로 받아들인, 

그를 이해시키고 위로할 수 있었을까?


길의 끝인 집이다. 


여전히 말들은 가슴 한가운데서 또아리를 틀고 움직이지 않는다. 

움직일 생각도 하지 않는다. 

이대로 화석이라도 될 태세로 버티고 있다. 

이쯤이면 말이 아니라 다른 무엇이다. 무엇일까.


나의 침묵에 말을 쏟아내던 그도 제 풀에 지쳐 말을 멈췄다. 


시간은 규칙적으로 흐른다. 


몸이 아픈 것을 인식하는 것은

인간이 스스로를 알아가는 과정에서 최초로 지불해야 하는,

어쩌면 지금까지 계속해서 지불하고 있는 대가일 것이다. -존 버거


굳어버린 말 때문인지, 몸, 어딘가 아팠다. 

강제된 침묵과 어둠이 차라리 낫겠다는 생각을 했다. 

한강의 소설 <희랍어 시간>에 나오는 비현실적 남녀와 공간이고 싶었다. 


그가 다시 말을 꺼냈다. 

이젠 무슨 말이든 해야 하지 않겠냐고 했다. 


나는 말 대신, 'ㅇㅇ' 으로 답했다. 


길은 끝나고, 

길이 아니었다면 하고 가정했던 시간도 끝났다. 


길 때문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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