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숲 속으로 들어간 것은 인생을 의도적으로 살아보기 위해서였다.
다시 말해서 인생의 본질적인 사실들만을 직면해보려는 것이었으며,
인생이 가르치는 바를 내가 배울 수 있는지 알아보고자 했던 것이면,
그리하여 마침내 죽음을 맞이했을 때 내가 헛된 삶을 갈았구나 하고 깨닫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삶이 아닌 것을 살지 않으려고 했으니, 삶은 그처럼 소중한 것이다.
그리고 정말 불가피하게 되지 않는 한 체념의 철학을 따르기는 원치 않았다.
나는 인생을 깊게 살기를,
인생의 모든 골수를 빼먹기를 원했으며,
강인하게 스파르타인처럼 살아,
삶이 아닌 것은 모두 때려 엎기를 원했다.
수풀을 폭넓게 잘라내고 잡초들을 베어내어 인생을 구석으로 몰고 간 다음에,
그것을 가장 기본적인 요소로 압축시켜서
그 결과 인생이 비천한 것으로 드러나면 그 비천성의 적나라한 전부를 확인하고 있는 그대로 세상에 알리며,
만약 인생이 숭고한 것이라면,
그 숭고성을 스스로 체험하여 다음다음번의 여행 때 그에 대한 참다운 보고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내가 보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생이 악마의 것인지 또는 신의 것인지 이상하게도 확신을 갖지 못하고 있으며,
사람이 사는 주요 목적은 '하느님을 찬미하고 하느님으로부터 영원한 기쁨을 얻는 것'이라고 다소 성급하게 결론을 내리고 있는 것 같다.
아직도 우리들은 개미처럼 비천하게 살고 있다.
우화를 보면 우리는 이미 오래전에 개미에서 인간으로 변했다고 하는데도 말이다.
우리는 난쟁이 부족처럼 학들과 싸우고 있다.
그것은 착오 위에 겹쳐진 착오이며, 누더기 위에 겹쳐진 누더기다.
우리들의 최고의 덕은 쓸모없고 피할 수 있는 불행의 경우에만 그 모습을 나타낸다.
우리의 인생은 사소한 일들로 흐지부지 헛되어 쓰여지고 있다.
정직한 사람은 셈을 할 때 열 손가락 이상을 쓸 필요가 거의 없으며,
극단의 경우에는 발가락 열 개를 더 쓰면 될 것이고,
그 이상은 하나로 묶어 버리면 될 것이다.
간소하게, 간소하게, 간소하게 살라!
제발 바라건데,
여러분의 일은 두 가지나 세 가지로 줄일 것이며, 백 가지나 천 가지가 되도록 두지 말라.
백만 대신 다섯이나 여섯까지만 셀 것이며, 계산은 엄지 손톱에 할 수 있도록 하라.
문명 생활이라고 하는 이 험난한 바다 한가운데는 구름과 태풍과 유사(流砂)와
그리고 천 가지 하고도 한 가지의 상황을 파악해야 하므로,
배가 침몰하여 바다 밑에 가라앉아 목표 항구에 입항하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추측항법으로 인생을 살 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뛰어난 계산가가 아니면 성공하기 어렵다.
간소화하고 간소화하라.
하루에 세 깨를 먹는 대신 필요하다면 한 끼만 먹어라 .
백 가지 요리를 다섯 가지로 줄여라.
그리고 다른 일들도 그러 비율로 줄이도록 하라.
지금 우리의 인생은 독일연방과도 같다. 독일연방은 수많은 군소국가들로 되어 있고,
그 국경선은 항상 변하고 있어 독일사람 자신도 지금 국경선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 알지 못한다.
*독일연방: 1871년 비스마르크에 의해 통일되기 이전에 독일은 39개의 군소 국가로 되어 있었다
- 헨리 데이빗 소로우, [월든] 나는 어디서 무엇을 위하여 살았는가 중에서(1854)
덕수궁은 이어져 있지 않아서 이별의 아이콘이 되었을 까요?
어젯밤 뉴스에 덕수궁 돌담길 일부 개방 뉴스를 전하는 앵커는 이런 식으로 인트로 멘트를 했다.
그런 것 같다.
이제 70미터가 남았다고 하니, 이별이 아닌 만남은 70미터 앞에 맞닥드리고 있는 셈이 된다.
70미터면, 눈코입이 보이는 거리인가?
아니다.
눈코입은 안 보일테고, 나의 연인인지, 아닌지는 알 수 있는 거리쯤 된다.
소로우의 [월든] 몇 줄을 읽으며, 아침을 시작하는데...
뜬금없이 덕수궁이 생각났다.
소로우는 말이 참 길다.
오늘 아침에 꽂힌 문장은
나는 인생을 깊게 살기를,
인생의 모든 골수를 빼먹기를 원했으며,
강인하게 스파르타인처럼 살아,
인데, 옮기다 보니, 말이 끊어지지 않는다.
사실 이보다 더 쭉 이어져 있다. 강제 절단을 하였다.
말이 긴데도 계속 읽게 된다.
마치 편집자가 없었던 듯 그냥 계속 말을 이어간다.
아마 숲속에서 오래도록 혼자 지내면서 생각이 생각에 꼬리를 물고 제 멋대로 둬서 그런 것 같다.
나는 이런 말을 좋아한다.
정제된 글도 좋지만,
소로우의 말처럼 손발이 아닌 뇌가 모든 것을 할 것이므로
뇌를 내버려두면 뇌는 수많은 생각들을 하나도 버리지 않고 모두 담는다.
마치 깊은 숲속처럼 어떤 생명도 버리지 않고 모든 것을 품어 제 아래서 자라게 한다.
소로우의 글을 읽다보면,
소로우의 뇌가 자연림과 닮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없는 것이 없다. 논어도 나오고 힌디경전도 나온다.
그것들을 잘 정리해 두지는 않았다.
그것들을 그것들의 입장에서 정리해 두지 않았다는 이야기이다.
그는 그것들을 제 멋대로 꽂아두고,
생각이 날 때는 아무때나 소환하여 그의 말 뒤에 붙인다.
생각이 나는대로 말하고, 생각이 나는대로 쓴다.
만약 우리같은 평번한 사람이 그렇게 하였다면, 누군가에게 핀잔을 받았을 것이다.
쓸데없는 이야기 그만해.
말이 왜 이렇게 길어.
소로우의 말은 길다.
르네상스식 그림이라기 보다면 현대미술과 닮았다.
맥락이 이어지지 않으면서도 캔버스를 빈틈없이 채운 모습이 그렇다.
내 인생의 모든 골수를 남김없이 파먹고,
스파르타식으로 인생이 아닌 모든 것을 때려눕히는 것이면
자신의 삶이 선명히 보인다.
그것은 다음생, 다다음생에 좋은 보고서가 되어 그때의 삶이 지금보다는 나아지게 된다고 말하는 것 같다.
간소한 것이고, 간소화 하는 것이다.
"내가 숲 속에 들어간 이유는
신중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
인생의 본질적인 사실들만을 직면하기 위해서,
인생에서 꼭 알아야 할 일을 과연 배울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그리고
죽음의 순간에 이르렀을 때 제대로 살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닫지 않기 위해서였다."
-[월든] 서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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