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가지고 사람들은 전쟁을 하는가.
모든 사람이 알고 있는 것을 가지고,
전쟁을 원치 않은 사람들의 절망을 가지고,
무엇 하나도 출정을 강요하는 것이라고는 없어도 고립되지 않으려고 출정하는 사람들의 자기 사랑을 가지고,
이제는 직장도 없어서 참전하는 사람들의 굶주림을 가지고,
아래와 같은 많은 고상한 감정들을 가지고,
①고통속에서의 연대의식
②표현되고 싶지 않은 모멸의 감정
③증오의 부재
이 모든 것들이 비열하게 이용되고, 이 모든 것이 죽음으로 이끌려 간다. -A.까뮈, 비망록 중에서
민주당 경선이 끝났다.
지난 겨울 안희정에 대한 포스팅을 한 적이 있다. 그에 대한 어떤 선택도 없이 그로 인해 떠오르는 단상을 긁적였었다.
조용했던 블로그는 그의 지지도가 상승함에 따라 방문자가 엄청났다.
그가 어떤 회오리를 일으키고 있음을 체감했다.
그러나,
민주주의자, 연정, 선의....
그의 신념은 분명히 드러났고 일관성이 있었으나, 그의 선의가 공격받았다.
공격을 받자, 그는 당당히 맞섰다.
하지만 그의 말과 그의 얼굴 표정에서 전과 다른 무엇을 느낄 수 있었다.
오늘 어떤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두려움'을 배웠다고 말했다. 두려움이었구나 싶었다.
"다수의 생각에 귀환하고 싶어하는 많은 유혹과의 싸움이었다. 미움과 분노의 정치라고 하는 현실에서 대화와 타협의 정치, 대화를 하기 위해서 어떤 견해든 간에 상대의 제안을 긍정적으로 존중해 대화를 시작해야한다는 선의의 발언에 이르기까지 저로서는 두려운 순간이었다. 그 두려움에 어떻게 서야하는지 배웠다." -오늘 머니투데이와의 인터뷰
그런 그를 보며, 어른 혹은 성인이라는 것은 참 어려운 것이구나 생각하게 되었다.
그가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그의 얼굴을 통해 보는 '성인'이라는 불리우는 사람들이 무엇을 해내기에는 미숙해 보였다.
그는 무장된 논리로 확고한 신념을 소리쳤으나 타인을 설득시키고 이해시키고 공감시키는 것은 실패했다.
지난 금요일 민주당 경선투표에 참여하였으나 그를 뽑지 않았다.
마음이 끌리는 또 다른 후보가 있었으나 나는 그도 뽑지 않았다.
나는 어른처럼 단호하게 말하고, 지시하기도 한다.
그동안의 단호했던 모든 상황에 대해 조금 민망하다는 생각을 한다.
지난 포스팅에 올린 까뮈의 글을 소환한다.
①고통속에서의 연대의식
②표현되고 싶지 않은 모멸의 감정
③증오의 부재
까뮈가 말한 이러한 마음으로 나는 다른 선택을 했다.
선택 뒤의 마음이 영 개운하지 않다.
모든 사람이 알고 있는 것을 가지고,
전쟁을 원치 않은 사람들의 절망을 가지고,
무엇 하나도 출정을 강요하는 것이라고는 없어도 고립되지 않으려고 출정하는 사람들의 자기 사랑을 가지고,
이제는 직장도 없어서 참전하는 사람들의 굶주림을 가지고,
나는 까뮈가 말한 이런 것들을 가지고 다른 선택을 했다.
이재명은 명연설이라고 불리는 영남경선 연설문에서 까뮈의 말을 인용했다.
나는 이 연설을 모든 경선이 끝난 어젯밤에 유튜브를 통해 들었다.
어제의 죄악을 벌하지 않는 것은 내일의 죄악에 용기를 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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