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읽히는대로 詩

[정희성] 저문 강에 삽을 씻고

by 발비(發飛) 2017. 4. 19.


집으로 가는 길! 시를 생각했다. 

뭐라 붙일 말 없이, 시 한 편에 내 고단함이 이해가 되었다.

이해가 아니라, '용인되었다'가 맞는 말이겠다. 


시 한 편에 내 고단함이 용인되었다. 

아주 오래된 시인데, 

그래서 오래된 시어들인데, 

시인 중 누군가가 지금의 말로 납득시켜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생긴다. 


왜지?

부족한가?


나는 현재의 모든 것이 궁핍하다고 느낀다. 


어깨를 마주하고 있는 소설가, 마음을 마주하는 시인, 눈을 마주하는 화가, 

...마주하는 신문, ...마주하는 책, 그렇게 현실인 모든 것이 궁핍하다. 느낀다.


그래서, 고단한지도.



저문 강에 삽을 씻고

정희성

흐르는 것이 물뿐이랴
우리가 저와 같아서
강변에 나가 삽을 씻으며
거기 슬픔도 퍼다 버린다
일이 끝나 저물어
스스로 깊어가는 강을 보며
쭈그려 앉아 담배나 피우고
나는 돌아갈 뿐이다
삽자루에 맡긴 한 생애가
이렇게 저물고, 저물어서
샛강바닥 썩은 물에
달이 뜨는구나
우리가 저와 같아서
흐르는 물에 삽을 씻고
먹을 것 없는 사람들의 마을로
다시 어두워 돌아가야 한다

-1978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