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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히는대로 詩

[헤르만 헤세] 9월

by 발비(發飛) 2017. 8. 29.

9월


헤르만 헤세


뜰이 슬퍼한다

꽃 사이로 차가운 비가 내린다

여름은 몸서리를 치며

말없이 종말을 향해 간다.


금빛으로 물든 나뭇잎이

키 큰 아카시아 나무에서 하나둘 떨어진다

여름은 시들어 가는 뜰의 꿈속으로

놀란 듯 창백한 미소를 띄운다. 


여름은 앞으로 오래 장미 곁에 

발길을 멈춘 채 안식을 그리리라

그리고 서서히 피곤에 겨운 

큰 두 눈을 감으리라.



일주일 간의 늦은 휴가를 보낸 첫 월요일, 

비가 많이 와 이른 퇴근을 하는 길, 헌책 서점에 들렀다. 

얼마 전 읽었던, 헤르만 헤세의 [삶을 견뎌내기] 좋았더래서, 

지난 해 가지고 있던 책을 정리하면서 함께 정리되었던 헤세의 [정원 일의 즐거움] 다시 사기 위해서였다. 

절판된 책이라 헌책서점에만 있다. 


비가 오는 버스 안에서 참지 못하고 책장을 펼치는데, 오늘과 딱 맞는 <9월> 이라는 시가 있었다. 

저릿함.


여름은 몸서리를 치며

말없이 종말을 향해 간다.


<9월>은 서정주의 <국화꽃 옆에서>가 다른 얼굴을 하고 내게 다시 왔던 것처럼, 내게 다시 왔다.  



"나는 늘 정원의 여름이 그토록 황급히 왔다가 간다는 사실이 놀랍고 걱정스럽다. 기껏해야 몇 달, 이 짧은 시간에 정원에는 여러 종류의 식물들이 자라 맘껏 생명을 누리다 시들어 죽어간다. 화단에 어린 꽃을 심어 물을 주고 비료를 주면 금세 흙을 뚫고 나와 자라고 헛되이 번성한다. 그러다 불과 두세 달이 지나면 어느덧 그 어린 식물도 늙어버린다. 이 생에서의 목적은 다 이루었므로 뿌리가 뽑히고 새로운 생명에게 자리를 내주게 된다. 이때 정원사는 여름이 순식간에 저만치 물러나는 것을 어느 누구보다 뼈저리게 느낀다."



나는 9월이다. 뭐라고 말할 수 없는 위로를 받는다.

헤세가 내게 잘 어울릴 거라며, 하루 이틀 남은 9월을 소개시켜 준 듯하다. 

어깨동무를 해도 될 친구가 같다. 


헤세는 참 좋은 어른이라는 생각이 든다. 


시간이 어떤 것이라서, 

[정원 일의 즐거움] 내게 늘 있었던 그 시간 오랜 동안은 느끼지 못했던 것을,

보내고 다시 찾은 오늘, 이렇게 따뜻하다니, 그 사이 바뀐 것은 시간 뿐이니 말이다. 


그래. 어느 줄기가 어느 뿌리의 것인지 알 수 없을 지경으로 서로 엉켜있었던 무성한 여름이 가고 있다. 

잎이 떨어지고, 줄기는 말라가는 9월이면, 서서히 뿌리를 드러내겠지. 

10월? 11월이면 뽑힐 때겠지. 흙이 적당히 묻은 하얗고 마른 뿌리를 드러내겠지. 

농부는 저 멀리 퇴비 더미로 휙 던지겠지. 

검고 기름진 퇴비가 되려면 또 어떤 시간이 흘러야 할까? 지독한 겨울이겠군. .......


여름은 앞으로 오래 장미 곁에 발길을 멈춘 채 안식을 그리리라

그리고 서서히 피곤에 겨운 큰 두 눈을 감으리라.


헤세는 참 좋은 어른이다. 


 

오늘 산 책! 맥락이 있다^^



헤르만 헤세의 정원 일의 즐거움


월든


작은 일기


어쩌다 보니 50살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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