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를 탔다. 인사를 했는데, 기사는 말이 없다.
목적지를 알려줬다. 대답이 없다.
대답이 없음의 의미가 뭔지 몰라, 잘 모르는 분이 많았으므로, 올림픽대로타고, 성산대교 건너서 합정역 방향 들어가서 바로 오른쪽.... 이렇게 설명했다. 또 대답이 없다. 백미러로 기사의 얼굴을 보았더니, 6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약간 무섭게 생긴 아저씨였다. 기사신분증을 보았더니, 개인택시 면허를 가진 분이었다. 그런 사람도 있지 싶어 가만히 창밖을 보고 있었다.
올림픽대로에서 성산대교로 빠지면 작은 네갈래길 같은 로터리가 있는데, 그곳에서 성산대교 방향이 아니라 노들길 방향으로 빠지는 거다. 이쪽이 아니라 저쪽으로 가야해요. 라고 말했다. 후진을 해서 방향을 다시 잡으면서도 말이 없다. 성산대교를 건너 강변북로에 들어서서 양화대교로 빠지는 라인에 줄을 선다. 아저씨 이 라인은 양화대교로 빠지는 쪽인데요. 또 대답이 없다.... 이 사람은 친절하지 않은 사람이구나 생각했다. 오늘 아침 출근길이었다.
'친절'이라는 단어에 대해 생각해 본다. 나의 친절에 대해서도 생각해 본다.
내가 친절했던 순간과 내가 친절하지 못했던 때를 생각해본다.
내가 친절을 받았을 때와 내가 친절함을 받지 못했을 때 상대방에 대해서도 생각해본다.
작은 결론 하나를 내린다.
내가 생각한, 나의 경우와 타인의 경우, 내가 친절하지 못했을 때는 뭘 알지 못했을 때였고, 뭘 알지 못했을 때 겸손한 태도가 맞았으나 불친절한 태도를 보였을 때도 있었다는 생각이다. 타인의 경우도 그런 듯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장사전에서 '친절'을 찾아보았다.
그릇이 큰 사람은 남에게 호의와 친절을 베풂에 자기의 기쁨으로 깨닫는다. 그리고 자기가 남에게 의지하고 남의 호의를 받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한다. 왜냐하면 친절을 베풂은 우월의 상징이며, 그것을 받음은 열등의 표지이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
그렇구나. 아리스토텔레스 중 전반부의 말은 동의하지만 친절이 우월의 상징이나 친절을 받음이 열등의 표지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아마 단어 해석에서, 혹은 어원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는 '친절'때문일 것이라 생각한다. 어쨌든 친절은 가진 자의 덕목인 것은 분명하다. 나의 능력이던, 지식이던, 가진 것이 많고, 거기에 흔히 말하는 仁이나 德을 갖춘 사람이라면 친절하게 될 것이다. 가진 것이 많아도 각박한 마음때문에 친절할 수 없는 사람도 있고, 가진 것이 많아도 仁이나 德을 갖추기 못해 친절함을 가장해 비아냥거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의 친절함은 고르지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건 반성이 아니라 관찰이다.
친절한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문장사전에 나온 '친절'에 관한 우리나라 속담, '장 단 집에는 가도, 말 단 집에는 가지 마라.' 말만 친절한 사람 또한 경계해야 할 것이다.
오늘 아침, 기사 아저씨의 친절하지 못함을 보면서,
나에게 친절해도 될만큼 베풀만한 것이 있도록, 그것이 겸손한 마음에서 시작되어 그들의 친절함도 받을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생각까지 미쳤다.
그리고 베낀 김에 '친절'에 관한 재미있는 이야기 이야기 하나 더! 아, 잘 사는 건 어려운 거구나 싶다!
옛날 그리스에 리므라는 별의 신이 있었는데, 하루는 달나라로 갔더니 아주 예쁜 님프가 친절히 인사해 주었다. 항상 쓸쓸하기만 했던 리므는 혼자 생각에 님프가 자기를 좋아하는 줄 알고 다음날 예쁜 꽃다발을 님프에게 보냈으나 님프는 이미 약혼자가 있으므로 꽃다발을 본 체도 않고 버렸다. 그 꽃다발은 춤추듯 땅 위로 떨어졌다. 무안을 당한 리므는 님프를 마구 때려주고 그들은 싸움을 하게 되었다. 주피터는 필요이상 남자에게 친절히 한 님프와 신사답지 못한 행동을 한 리므를 땅 위로 내쫓았다. 갈 곳 없는 그들은 하늘에서 버린 꽃다발이 낭아초가 되어 있으므로, 님프는 흰꽃으로 리므는 분홍꽃으로 붙어 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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