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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겨듣는 曰(왈)

노무현과 안희정

by 발비(發飛) 2016. 12. 11.



저 희정입니다. 

그냥 갑자기 뵙고 싶어 다녀갑니다. 평안하세요. 

-2016.12.10 안희정


충남지사 안희정이 박근혜가 탄핵된 다음 날, 봉하마을을 찾아 방명록에 남긴 말이다. 

저 타이밍에 저런 편지를 망자에게 남긴 사람은 분명 마음이 여리고 따뜻한 사람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가 갑자기 보고 싶을 때는 주로 마음이 외로울 때다. 

의지할 누군가를 찾을 때다. 

이야기를 나누고 생각을 나눌 누군가가 그리울 때이다. 

내 욕심을 채우고 싶을 때 갑자기 누군가가 보고 싶지 않다. 

보통 사람들이 모두 그럴 것이다. 


연달아 노무현 전 대통령과 안희정 도지사의 인연에 대한 영상을 보았다. 


우리도 이렇게, 이런 마음으로 살면 되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타인의 관계도 이런 마음으로 살고, 사회와의 관계에도 이런 마음으로 살고, 대통령을 뽑을 때도 이런 마음으로 살면, 

내가 살기 괜찮은 나라가 아니라, 모두가 살기 괜찮은 나라가 될 거고, 그 나라 안에 살고 있는 살기 좋을 것 같다. 


근래에 불확실한 나의 미래때문에, 나의 노년때문에 너무 많은 고민을 하고, 그 고민과 스트레스 때문에 불행한 시간들이 계속 되고 있었다. 

선택지가 없는 삶. 열심히 살았던 시간들이 무의미하고, 어리석게 느껴질 만큼 나의 미래는 대책이 없다는 것. 

이 극도의 스트레스와 박근혜 국정농단 사건이 나란히, 개인인 나와 사회 속의 나 앞에 나란히 놓였더랬다. 


안희정 도지자는 영상 말미, 도지사 유세때 자신이 노무현을 좋아하는 이유를 말한다. 

사람들은 이야기한다. 노빠, 친노, 

잘 생각해보면, 

노무현대통령 탄핵을 반대했던 수많은 국민이 모두 노빠는 아니었다. 

맞지 않다고 생각하니까 아니라고, 지금처럼 이러면 안되는거니까 거리로 나가 항쟁을 한 것이고, 국회에서 멋대로 통과시켜던 탄핵을 헌재가 바로 잡도록 힘을 보탠 것이다. 


오늘 안희정의 방명록과 영상을 보면서 나는 정치적이지 않다는 결론을 내린다. 

나는 아프고, 나쁜 것을 싫어한다. 

그것에 내게 왔을 때 나는 통점이 너무 많고, 민감해 남들보다 수백배가 더 아프다. 

나는 사람들이 모두, 다같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나도, 부모님도, 동생도, 친구도, 지하철 옆 자리에 앉은 사람도 모두 자유와 평화를 누렸으면 좋겠다.

내가 가 봤던 어떤 나라들처럼 천천히 밥을 먹고, 차을 마시고, 할 일없이 다리 난간에 걸터 앉아 이야기도 나누는 그런 나라에서 살고 싶다. 


4대강을 안 만들고, 재벌들이 최순실에게 줄 돈을 자기 직원들에게 나눠주고, 쓸데없이 도로와 보도블럭을 만들지 않으면, 우리도 그렇게 살 수 있다. 잘 생각해서 방법을 찾으면 그렇게 살 수 있다. 우리 아이들에게 그런 세상을 물려줘야 하는 것이 의무라는 생각이 너무나 강하게 든다.


왜? 박정희의 유신때 초등학교 다니고, 중학교 때 10.26있었고, 고등학교 때 5공이고, 대학교때 6.10 항쟁이었다고 하니까...여행 중에 만났던 애가 그럼 역사교과서네요 라고 했었는데, 그 후에 노무현대통령이 자살하고, 4대강이 생기고, 세월호에 탄 어린 아이들이 수백명이 어이없이 죽었다. 그리고 지금의 촛불혁명은 노벨평화상을 탈 지도 모른다는 근거있는 말이 돈다. 그 사이 나는 애가 아니고, 노후를 걱정하는 기성세대 이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포기할 뻔한 삶을 다시 추스리기로 한다. 

사회적으로 나는 아직 안희정 도지사를 지지하기로 결정하지 않았다. 잘 볼 것이다. 최선을 다해 고민할 것이다. 






딴 소리 


사람들은 나더러 정치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고 한다. 

누구는 비난을 섞어 말고, 누구는 그저 열정적이라고 말한다. 

어릴 때부터 우리집은 아침밥상에서 각자가 흥미있는 신문 지면을 나눠 보았고, 그 중 재미있는 기사거리를 이야기하면서 밥을 먹었다. 

언제부터였는지는 기억이 없지만, 아마 오빠가 신문을 읽을 수 있을만큼 머리가 굵었을 때였지 않았을까 한다. 

뉴스를 보던, 장학퀴즈를 보던, 책을 읽던 뭔가 새로운 이슈에 대해 항상 이야기를 했다. 

한겨레 신문이 창간이 되어 주주를 모았을 때, 아버지가 교육공무원이었음에도 하나의 주주, 구독자가 되었다. 

내가 시사에 관심이 많은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광화문에서 촛불집회가 있을 때마다 나는 나갔고, 

경상북도 안동에 계시는 아버지와 엄마는 내가 나갈 시간 즈음에 어김없이 전화를 해 따뜻하게 챙겨입고 나가라고 하신다. 

그 말도 안되는 곳이 고향인 내가 광화문에 있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탄핵 발표가 있던 날, 발표즈음에 엄마에게 또 전화가 왔다. 여의도냐고. 거기는 어떠나고.

근무 중이라고 하니까, 내가 거기 갔을 줄 알았다고 그랬다. 


우리 아버지가 경북 안동에서 교육공무원을 하셨지만, 

누군가 만들어준 뉴스를 그대로 보지 않고, 이 뉴스가 무엇에 관한 것인지. 

그럼 우리가 어떻게 되는 것인지, 의견은 어떤지 자유롭게 말할 수 있게 두셨고, 

한겨레신문을 보지 말라고 경찰이 찾아온 적도 있었지만, 본인이 판단하기에 가장 바른 신문이라고 생각한 한겨레신문를 끝까지 보셨다. 

이것이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기질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판단없이 누군가가 들려주면 들려주는대로 믿는 사람들을 보면, 이해가 안된다. 

사회가 아니라 자신의 입장에서만 뉴스를 보는 사람들을 보면, 또 이해가 안된다. 

신문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나오기 때문에 나만 사는 것이 아니라 나보다 더 많은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을 자연스레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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