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든 따뜻한 롤빵을 좀 드시지요. 뭘 좀 드시고 기운을 차리는 게 좋겠소.
이럴 때 뭘 좀 먹는 일은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될 거요."
-레이먼트 카버, [대성당] 중에서
며칠째 먹지를 못했다.
위궤양이 도졌는지, 안 먹어도 아프고, 먹어도 아프고, 보리차처럼 근근이 버틸만큼만 먹었다.
...입맛도 잃어버렸다.
그렇게 허기가 져서인지, 어제 갑자기 지난 겨울 맛있게 먹었던 어죽탕이 간절히 생각이 났다.
합정동 어죽탕 집을 처음 함께 갔던 분에게 메시지를 해서 점심 괜찮냐고 했더니,
선약이 있다고 내일 먹자고 했다.
오늘은 학교 수업이 있는 날이라 혹 준비가 덜 되었을 경우 점심시간을 이용해 한 번 살펴봐야 할지도 모르니까, 안된다고 했다.
어젯밤 열심히 준비한 탓에 수업준비는 더 하지 않아도 되고,
여전히 어죽탕은 먹고 싶고,
오늘도 유효한가요? 하고 다시 메시지를 보냈다.
넵!
얼마만에 음식을 먹은 것인지 싶었다.
초록 김치도, 두부 조림도, 흰 쌀밥도 낯선 외국 음식처럼 눈에 하나 하나 밟혔다.
어죽탕 한 그릇을 거의 다 비웠다.
참 잘 먹었다.
커피 한 잔을 두고 마주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내가 좀 달라졌다.
밥 한 그릇을 먹었는데, 웃음도 잘 나오고, 목소리도 잘 나오고, 손도 잘 움직였다.
"뭘 좀 먹는 일은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었다."
참 좋은 방법인 것 같다.
어려워서 뭘 어떻게 해야 하지 못할 때는 뭘 좀 먹어야 겠구나 생각했다.
그리고 누군가 힘들어한다면, 뭘 좀 먹자 하고 손을 끌어야겠다고도 생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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