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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히는대로 詩

[박상천] 5679는 나를 불안케 한다.

by 발비(發飛) 2016. 4. 4.

5679는 나를 불안케 한다 


박상천


나는 왜, 

앞에 가는 자동차 번호판 숫자를 

바꾸고 싶을까 

5679는 5678이나 4567로 순서를 맞추고 싶고 

3646은 3636으로, 7442는 7447로 짝을 맞추고 싶을까 

5679, 3646, 7442는 나를 불안케 한다.

나는 왜, 

카세트 테이프는 맨 앞으로 돌려서 처음부터 들어야 하고 

삐긋이 열린 장롱문은 꼬옥 닫아야 하고 

주차할 때 핸들은 똑바로 해두어야 하고 

손톱은 하얀 부분이 보이지 않도록 바짝 깎아야 할까 

테이프와 장롱문과 핸들과 손톱이 나를 불안케 한다.

나는 왜, 

시계는 1분쯤 빨리 맞추어 두고 

컴퓨터의 백업 파일은 2개씩 만들어 두고 

식당에서는 젓가락을 꼭 접시 위에 얹어 두어야 하고 

손을 씻을 때면 비눗기가 느껴지지 않을 때까지 손을 헹구어야 할까 

시계와 컴퓨터와 젓가락과 비누가 나를 불안케 한다.

그래도 나는, 

나를 불안케 하는 것들과 함께 살아간다, 잘 살아가고 있다.



일요 퇴근길에 123456789를 몇 번 셌다. 

123456789...123456789

자동이면서도 수동인 123456789

123456789를 말할 때는 앞 숫자를 미리 생각하지 않는다. 

지나간 숫자도 생각하지도 않는다. 무념무상!

그냥 123456789하고 부르는 숫자와 소리, 무의식에 가까운 마음이 있다. 

나는 123456789하고 이렇게 숫자세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나의 네이버 아이디는 123456789다.


123456789. 천천히 1 2 3 4 5 6 7 8 9.

혹 123456789 중에 하나쯤 멈칫하면, 처음부터 다시 센다. 

별일없다. 

별일없는게 좋아서 123456789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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