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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히는대로 詩

[허연] 오십 미터

by 발비(發飛) 2016. 3. 6.

오십 미터


허연


마음이 가난한 자는 소년으로 살고, 늘 그리워하는 병에 걸린다. 


오십 미터도 못 가서 네 생각이 났다. 오십 미터도 못 참고 내 후회는 너를 복원해낸다. 소문에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축복이 있다고 들었지만, 내게 그런 축복은 없었다. 불행하게도 오십 미터도 못 가서 죄책감으로 남은 것들에 대해 생각한다. 무슨 수로 그리움을 털겠는가. 엎어지면 코 닿는 오십 미터가 중독자에겐 호락호락하지 않다. 정지 화면처럼 서서 그대를 그리워했다. 걸음을 멈추지 않고 오십 미터를 넘어서기가 수행보다 버거운 그런 날이 계속 된다. 밀랍 인형처럼 과장된 포즈로 길 위에서 굳어버리기를 몇 번. 괄호 몇 개를 없애기 위해 인수분해를 하듯, 한없이 미간에 힘을 주고 머리를 쥐어 박았다. 잊고 싶었지만 그립지 않은 날은 없었다. 어떤 불운 속에서도 너는 미치도록 환했고, 고통스러웠다. 


때가 오면 바위채송화 가득 피어 있는 길에서 너를 놓고 싶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었을 때, 앞으로 뒤로 4,5킬로미터 아득한 길에 단 한사람도 없는 길이었고, 스페인의 해는 선그라스를 끼고도 눈이 부시고 뜨거웠다. 나는 그 길에서 빙글빙글 돌았다. 풍경을 구경하고 싶어서도 아니고,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도 아니었다. 스프링쿨러가 되고 싶었다. 배낭보다 더 무겁게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운 수많은 사람들을 그 길에 뿌리고 싶었다. [오십미터]라는 시를 만나고서야 내가 무엇을 한 것인지 알 것 같기도 하다. 


때가 오면 바위채송화 가득 피어 있는 길에서 너를 놓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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