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타의 발에는 뼈가 없다
발비
자이살메르에 가기 위해서는 모래사막을 건너야 한다
도시로 가는 길목에서
사막은 뼈가 있는 것들을 걸려내고 있다
낙타의 물렁한 발이 필요하다
뼈 있는 발로 모래사막을 건너면 사막은 발을 삼켜버린다
모래는 뼈가 있는 것들을 삼킨다
낙타의 물렁한 발을 빌려 사막을 건넌다
모래사막이 발을 삼키려 하면
뼈 없는 낙타의 물렁한 발은 모래 위에 납작하니 눕는다
때로 세상이 나에게 모래사막으로 올 때,
나도 납작하게 누워 견딜 수 있는 물렁한 발을 가져야 한다
세상에게 발목 잡히지 않기 위해
혹은, 나의 뼈에 나의 발이 찔리지 않기 위해
날카로운 뼈들을 삭혀 낙타의 물렁한 발을 가져야 한다
언젠가는 홀로 사막을 건너 황금도시로 가야 한다
홀로 세상을 건너야 한다
1. “모래는 뼈가 있는 것들을 삼킨다”. 그러고 보니 그런 것 같다. 그래서 “사막을 건너”려면 “낙타의 물령한 발을 빌려”야 한다. 그러고 보니 그 또한 그런 거 같다. “낙타의 물렁한 발”. 그렇다면 “낙타의 물렁한 발”은 어떻게 사막을 건널 수 있는가? 모래가 발을 삼키려 하면 “모래 위에 납작하니 눕”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서 “모래 위에 납작하니 누”울 수가 있는가? 그것은 뼈가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뼈가 있는 것들은 “납작하니 눕”지 못하고, “누”으려고도 하지 않는다. 바꾸어 말하면 뼈 있는 우리 모두는, 그대로는, “날카로운 뼈”를 가지고서는, ‘누울 줄 모르고서는’, 사막을 건너지 못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사막”은 세상이다. “세상에 발목 잡히지 않기 위해서는” “날카로운 뼈들을 삭혀”야 한다고 이소영 시인은 말한다. 또 시인은 그것들은 너무 “날카로”워서, “나의 뼈에 나의 발”을 찌를 수도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그렇다. 여기서 “뼈”는 부정적인 것이다. 욕심, 교만, 부정적 자존심 등등… 그리고 “눕는다”고 하는 것은 긍정적이 측면의 것들, 즉, 낮아짐, 겸손, 배려 등을 말함일 것이다. 그러니 그런 “뼈”를 지니고서는 “황금도시”로 가기 어렵다는 것이다. 우리가 “홀로 사막을 건너 황금도시로 가”기 위해서는 우리의 마음 속에 남아 있는 “날카로운 뼈들을 삭”히기를 이소영 시인은 당부하고 있다.
이소영 시인은 지난 2년 동안 배낭여행을 떠났다. 인도, 네팔, 파키스탄, 캄보디아를 다니면서, 온몸과 마음을 다 소진시켰다. 탈진이 되어 돌아온 시인에게 그래서 남는 게 뭐가 있냐고 질문하자 “에너지”라고 답한다. 육체도 마음도 다 소진시키고 나니까 에너지가 얻어지더라는 것이다. 역설이다.
우리는 그동안 너무 많이 가지려고 한 건 아닌가? 너무 욕심을 부려 위로만 위로만 뻗어가려고 한 것은 아닌가? 그래서 뻗어가는 데 장애가 되는 것들은 모두 꺾어버리거나 무참하게 짓밟아버리거나 잘라낸 것은 아닌가? - 손옥자
2. 발상의 참신함과 활달한 어법이 매력적이다. 주제를 미리 던져놓고 머뭇거림 없이 과감하게 밀고나가는 기법이 능숙하다. 강한 자아의식과 삶에 대한 치열한 의지가 이러한 기법과 잘 어우러져 독특한 시세계를 만들어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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