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發飛가 쓴 詩, 小說

[발비] 남김없이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신뢰

by 발비(發飛) 2018. 6. 4.

남김없이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신뢰



내가 신뢰하여 함께 했던 홍가슴개미는 

모든 교회가 쉬는 월요일에 사라졌다. 


노을이 빨갛게 북향 주방창으로 비껴 들어온 일요일 저녁, 

노릇하게 투명한 꿀 항아리 속에 자지러지듯 웃는 꼴로 몸을 돌돌 만 채,

홍가슴개미는 티끌만한 빨간 점이 되어있었다.  


나는 방문 틀 나무결 사이, 틈이라고도 할 수 없는 틈을 오가며 먹이를 나르던 홍가슴개미를  

처음 본 날 부터 살아 움직이는 것들을 신뢰하기로 했다. 


기도를 미처 끝내지 못한 거룩한 일요일 저녁, 

나는 살아 움직이는 것들에 대한 신뢰에서, 

한 점 남김없이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신뢰를 생각한다.


혹, 모든 교회가 쉬는 월요일, 

홍가슴개미 따라 내 몸을 돌돌 말거든, 

꿀항아리의 달콤함에 빠져 자지러지듯 내 몸을 돌돌 말거든, 

꼴깍꼴깍 죽는구나 생각하여 아는 척 하지 말고 

남김없이 사라질 때까지 모른 척 그냥 두라.


신뢰를 핑계삼아 부탁한다.

한 점 남김없이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신뢰로 모른 척 그냥 두라



모가 났다 말했다. 

까칠하다 말했다. 

누군가는 두 마디도 못하겠다 말했다. 

상관하지 않았다. 

결국 해내면 아무 말도 못할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해낸다'는 것이 중요했다.


그때, 내가 만난 홍가슴개미다. 

하얀 페인트가 칠해져 나무결조차 잘 보이지 않는 그 결 사이로 홍가슴개미가 오간다. 

그냥 오가는 것이 아니라 먹이를 물고, 들고 간다. 

그 가까운 곳에 붙여둔 개미용 컴배트가 무색했다. 

개미용 컴배트를 떼어내고 홍가슴개미를 관찰했다. 

매일매일 살아있었고, 

살아있는 내내 바쁘게 먹이를 날랐다. 


그러던 어느날 꿀단지 속에 몸을 말고 죽은 홍가슴개미를 보았다. 

방문을 오가는 홍가슴개미는 여전히 먹이를 나르고 있었다.  

번갈아 가면서 본다. 

쉬지 않고 움직이는 홍가슴개미와 꿀단지 속에 빠져 점보다 작게 몸을 말고 죽은 홍가슴개미.


시간이 아주 많이 지났다. 

홍개미를 생각한다. 


나는, 나는, 나는 바쁘게 움직이다가도 꿀단지를 생각한다. 

남김없이 사라질 수 있는 곳이 아닐까 생각한다. 

지독한 달콤함만이, 온 몸을 휘감을 달콤함만이 

내가 나를 스스로 버리고, 스스로 날려버릴 수 있는 선택을 할 수 있는 곳이 아닐까 생각한다. 


무엇인가를 남기는 것, 그 무의미함에 대해 생각한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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