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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겨듣는 曰(왈)

이른 출근

by 발비(發飛) 2011. 6. 9.

밤형 인간이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학교에 다닐 때부터 해가 지면 힘이 나고, 해가 뜨면 힘이 빠지는 뱀파이어였다.

5분만 더 자자!를 외치다가...

출근때마다 지각시간에 간당거리며 회사에 도착했다.

 

그런데

몇 년전부터 이른 아침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 홀로 앉아있을 때가 좋다.

분주하지 않는 시작.

 

이제 막 출근하려는 사람들때문인지

열어놓은 창밖으로 차들이 지나가는 소리가 이어진다.

10분전까지만 해도 간간히 들렸는데...

저 치열함 속에 내가 있지 않아 다행이다.

 

조용하게 출근했다.

시속 70-80을 유지하며,

남들이 시속 몇 킬로미터로 달리던 상관없이 나는 도로의 룰대로, 나의 룰대로...

차선과 속도를 유지했다.

평화로웠다.

마치 같은 길 위에서 달리지만,

저들과 나의 길이 다른 차원에 있는 듯 했다.

다른 차원의 것들은 아련하게 느껴지며 아름답다.

내가 그들과 나란히 같은 차원일때보다 훨씬 더 그렇다.

 

빈 책상들을 보며,

어제 그들의 흔적들을 보며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진다.

삶 지문들이 책상위 여기저기에 찍혀있는 듯 하다.

그것을 보는 것이 좋다.

아마 나의 이른 출근은 그들의 삶을 찬찬히 여유있게 둘러보고 싶어서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어떤 이들은 일중독이라서 그렇다고 하지만,

그것은 천만에 말씀이다.

 

나는 이른 아침,

커피를 마시며, 내가 사는 내 세상이 아닌 다른 이들의 세상을 엿본다.

그리고 다른 차원이라고 생각하는 그들의 삶이

결국 나와 같은 차원의 것이라는 것이라고 여기며 마음의 평화를 얻는다.

 

나는 나와 닮은 신이 아니라,

나와 닮은 인간에게서 위안을 얻는다.

 

이른 출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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