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없는 직관은 맹목이고, 직관없는 개념은 공허하다. -칸트
이 말을 떠올리고는 생각한 그림이다.
고흐의 씨 뿌리는 사람이라는 그림이다.
어젯밤 늦게 정서불안증세의 재발로 뭘 해야 할지 몰라 두리번하다가 거울을 보았다.
얼굴이다.
내 얼굴은 실로 엽기적이었다.
무표정, 굵은 주름, 번들거림, 무엇보다 짜부라든 미간...
이것이 누구도 볼 수 없는 리얼리티라는 생각이 들었다.
몸에 거울을 비춰본다.
몸은 말이 없다.
다리를 비틀어보지만 다리는,
손을 움직여보지만 손은,
발을 꼼지락해보지만 발은,
가슴을 들먹거려보지만 가슴은,
얼굴이외의 다른 부분은 결코 말을 하지도 내색하지도 않는다.
얼굴은 내색하지 않는 것들의 감정까지 끌어올려 담아놓는다.
웃는다고?
그렇더라도 웃고있다고 하러라도
얼굴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
예민 그 자체이다.
작은 변화에도 얼굴은 반응한다.
그것을 알아채지 않는다면 극대화되어 움직인다.
씨를 뿌리는 사람은 내가 좋아하는 고흐의 그림 중의 하나이다.
어느 것 하나 강열하지 않는 것이 없고 움직이지 않은 것이 없다.
딱 하나 농부의 얼굴만은 가지런하다.
가지런하게 보인다.
이것은 거리의 문제이다.
그에게 가까이 가볼까?
그의 얼굴은 태양빛 아래 멀쩡할 수 있을까?
그의 얼굴은 땅에서 올라오는 저 기운에 멀쩡할 수 있을까?
저 멀리 있는 집을 등지고 멀쩡할 수 있을까?
목에 걸친 씨주머니의 무게에 멀쩡할 수 있을까?
수확의 기쁨을 상상하며 멀쩡하다 할 수 있을까?
농부의 얼굴. 무엇이 보이나...
찌그러진 회복불능의 삶이 보인다.
그래서 그것을 하지 않는 것이다.
나이만큼 보았을 눈, 그 눈안에 들어있는 것들.. 무엇을 보았지.
나이만큼 냄새를 맡았을 코, 그 안에 냄새들은 아직 그 길고 깊은 속에. 그것들은 그 속에서 뭘 하지.
나이만큼 먹었을 입, 그 입으로 들어가 씹어삼켰을 것들, 그것들은 무엇으로 변했지.
각진 턱, 동그란 이마, 몇 개의 흉터....
얼굴이 무능력한 거울이길 바란다.
나의 것들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는 반편같은 거울이길 원한다.
저 농부의 얼굴이 많이 보고 싶다.
왠지 닮았을 것 같다.
개념없는 직관은 맹목이고, 직관없는 개념은 공허하다.
어제 본 내 얼굴이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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