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비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옛날 사대부가에서 초상이 나면 곡비를 고용했다고 한다. 사람이 계속 울 수는 없는 일이다. 계속 슬플 수는 없는 일이다.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너무나 슬퍼도 사이 사이 딴 생각도 하고 밥도 먹는다.
곡비가 하는 일은 상주가 지속적인 슬픔을 가지도록 슬픔의 감도를 유지시키는 것에 목적이 있다.
물론 상가집의 슬픔, 혹은 부모에 대한 효도같은 것을 밖으로 드러내보이기 위한 눈가림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긴 하겠지만,
난 전자에 무게를 둔다.
어떤 이의 죽음 앞에서 운다는 것은 100%의 사랑이나 그리우이라고는 할 수 없다.
죽은 이 앞에서 흘리는 눈물은 사랑, 아쉬움, 원망, 한.... 이러한 것들의 복합체이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당신이 그립습니다.
당신은 왜 그랬나요?
그때 나는 당신이 원망스러웠어요.
그 일은 당신과 내가 어떻게 했어야 했나요?
나도 할 말이 있어요.
뭐 이런 것들...
곡비는 끊임없이 소리내어 울어줌으로써 이 모든 감정들을 소해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끝도 없는 곡비의 울음소리에.. 감정의 감도를 극도로 유지하다보면 이 모든 것들이 하나 둘 씩 주체적으로 해결되어 갈 수 있을 것이다.
울면서 나 자신과 죽은 이가 감정을 터는 것이다.
바닥이 보일 때까지.
그렇게 보내고 나면, 원망이나 그리움보다는 죽은 이에 대한 극락왕생 내지는 천당행을 가벼운 마음으로 빌어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제 늦은 시간 덕수궁으로 갔다.
마지막 날 밤을, 내가 좋아했던 사람과의 마지막 밤을 함께 하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도착한 시간은 밤 11시, 분향을 한 시간은 세벽 3시 10분 경.
나는 긴 조문 행렬 가운데 있었다.
그들은 대개 삼삼오오... 아님 둘...
앞 뒤 사람들이 일행과 나누는 대화를 들으며 혼자서 네시간을 기다린다는 것은 참 힘든 일이었다.
그리고 '곡비'를 생각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나의 앞 뒤에 있던 사람들의 대화내용은 변해갔다. 물론 바닥까지 꺼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한 사람을 보내는 길에 그 사람을 가볍게 하는 것과 더불어 나 자신과 그 사람 사이에 만들어진 어떤 우주라면 우주, 그릇이라면 그릇을 모두 비우는 것. 그것이 진정 보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
그렇다면 곡비가 필요하다.
이 서울에 곡비를 두어 잠시 멈춰지는 울음을 이어, 그에 대한 생각을 이어 감정의 도를 유지시키며 바닥까지 비워야 한다.
털어내야 한다.
내가 무엇이 잘못된 것에 대해 바닥까지 긁어내어 잘못되었다고 대성통곡하고
당신은 왜 내게 그랬냐며 소리치며 대성통곡하고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냐며 대성통곡하고
...
나는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한 것을 이제 알았다.
지켜주지 않은 것 때문에
우리는 이제야 그 분이 얼마나 우리에게 중요한 사람인지, 우리 삶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 사람인지 알게 되었다.
그런 사람... 대성통곡하면서 격정적으로 울지 않으면 우린
또 금방 울음을 그칠 것이다. 그리고 잊을 것이다.
새로운 그릇이 아니라 울음의 끝이 담겨진, 감정의 끝이 담겨진 그 그릇에서 살게 될 것이다.
감정을 비워내어야만 한다.
그릇을 깨끗이 닦아내어야만 한다.
그래야 새로운 그릇이 되는 것이다.
광화문 한 가운데 곡비를 두고 싶다.
그렇게 곡비를 두고 전국민이 통곡을 한다면,
오늘, 영결식장에서 야유를 받았던 우리가 뽑았다는 그 사람 대통령, 또한 그 소리에 맞춰 울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옆 사람들이 대성통곡을 하고 우는데 감정이 동요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그럼 처음에는 억울한 듯 울겠지.
그렇지만 울다 울다, 말하다 말하다보면 그 사람도 어느 순간 '잘못했다'는 말을 하지 않을까..
지금 청와대에 있는 그 분이 그래야 하고, 우리도 물론 그래야 한다.
울다 울다 보면 모두가 이명박대통령도 함께 울게 될 것이고, 울면서 말하다보면 뭐가 잘못 된 것인지 알게 될 것이다.
사람이면 말이다.
꺽꺽... 하고 숨이 막힐때까지 울어야 한다.
나는 제대로 울지 못했다는 생각이다.
어젯밤과 오늘새벽이 그랬고,
오늘 오전의 영결식을 보면서도 그랬다.
그래서 난 곡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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