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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히는대로 詩

[김혜순] 하늘강아지

by 발비(發飛) 2009. 7. 22.

하늘강아지

 

김혜순

 

따뜻하고 부드러워

마시멜로 같아.

맥박은 작고 빠르고,

방심한 눈앞으로 퍼뜩 지나가버리고 말아.

그 작은 분홍 입속에 손가락을 넣을 수 있을지도 몰라.

이 세상에서 제일 부드러운.

너무 부드러워 껴안을 수조차 없는.

늘 아침엔 우유 한 접시를 부엌에 나둬야 할걸.

저것 좀 봐 잠들면 저렇게

안개 공처럼 동그랗게 몸을 말잖아.

조심해 입김 한 방에도 사라질지 몰라.

나 그거 안고 싶어서

해 뜰 때 새털구름 같은 몸살!

물끄러미 바라보면 부엌문 앞에

투명한 작은 공 한 개처럼 맺힌 것.

어쩌면 내 몸에서 나 몰래 나온 것일지 몰라.

어쩌면 하늘에서 내 부엌까지 내려온 걸까?

나 태어나기 전 너무 가벼워 구천을 날던 그것.

나 데려가려고 다시 온 그것?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하늘강아지.

 

또 눈앞을 퍼뜩

지나가네.

 

 

이 시을 읽는 순간, 나는 만약 다시 장래희망을 적어야 할 일이 있다면 '하늘강아지'라고 적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혹시 그렇게 적어서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내 삶이 좀 돌아가게 되더라도 한 번쯤은 꼭 그렇게 '하늘강아지'라고 적고 싶다.

삶을 살아가는 내내 꼭 해보고 싶은 것 중에 하나라고 생각했다.

강한 필이 왔다.

 

왜냐고 물으신다면, 시인이 말하는 하늘강아지가 내가 되고 싶은 것이니까...

정말 하나도 빼지 않고 내가 되고 싶은 거니까...

 

무엇이 그렇게 되고 싶은 거냐고 물으신다면, 바로 이거!

 

따뜻하고 부드러워

마시멜로 같아.

맥박은 작고 빠르고,

방심한 눈앞으로 퍼뜩 지나가버리고 말아.

그 작은 분홍 입속에 손가락을 넣을 수 있을지도 몰라.

이 세상에서 제일 부드러운.

너무 부드러워 껴안을 수조차 없는.

늘 아침엔 우유 한 접시를 부엌에 나둬야 할걸.

저것 좀 봐 잠들면 저렇게

안개 공처럼 동그랗게 몸을 말잖아.

조심해 입김 한 방에도 사라질지 몰라.

 

따뜻하고 부드러움. 마시멜로처럼 온도를 주지 않아도 따뜻하고 폭신한, 살아있는 것 같지도 않게 가지런한 맥박. 맥박조차 평화.

이세상에서 가장 부드러운,. 누군가 우유를 주고 싶은... 하지만 상관없이 몸을 말고, 상관없이 흔들리고, 상관없이 동글동글한. 그런 몸짓.

조심해... 한방에 사라질지 몰라... 그래 그런 나....

나의 장래희망이다.

 

모든 것이 달라진 지금, 나는 그것이 태초의 나였음을.. 아련히 알겠는데 기억이 나지 않는 지금, 난 태초를 꿈꾼다.

엄마에게서 갓 태어난 붉게 쪼글했을,

그래서 모두가 만지기조차 주저했을,

울고 웃는 것에 모두가 울고 웃었을,

그 태초의 시간을 꿈꾼다. 그 시간 하늘강아지를 꿈꾼다.

 

허황하다 이야기해도 할 수 없다,

니가 몇 살인데..

혹은 누구나 그렇다고 해도...

참 웃긴다 해도...

니가 그런 것을 꿈꾼다고... 니가 감히.. 이렇다 해도...

세상이 모두 그래도 너 같은 인간이... 라고 해도...

 

나는 이 시를 읽는 순간, 희망이 없던 나에게 장래희망이 생겼다.

하늘강아지. 나는 이것을 장래희망으로 삼는다.

내 세상의 태초가 내 장래희망이다.

엄마에게 미안하다. 초등학교 때도 확신없어 간호사라고만 적었던 그 장래희망이 처음으로 생긴 지금,

태초에 나를 낳아주었던 엄마에게 미안하다.

 

나는 아마 희망을 갉아먹으려고 살았는지 모른다.

나는 처음부터 희망을 갉아먹으려고 태어났는지 모른다.

 

그리고 그 희망을 다 갉아먹었는지 모른다.

이제 더는 먹을 것이 없어 양식을 삼을 희망을 다시 만들려고 하는지 모른다.

다시 갉아먹으려고... 이건 무서운 일이군. 

 

하늘강아지를 꿈꾸다 내 안에 숨은 나도 모르는 악의를 눈치채고 말았다.

그래도 간절히 '하늘강아지'가 되고 싶다.

먹을 것이 간절히 고픈가.....

 

 

 

 

 

 

 

 

 

 

부드럽고 포근함이 내 양식이었을  삶,

그 부드럽고 여린 것들은 내 몸으로 들어와 지금,

내게 무엇이 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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